상자 속으로 들어간 여우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안트예 담 지음, 유혜자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를 기억할 수 있나요?


제 6살 된 큰 아이가 얼마 전에 죽음을 영원한 헤어짐으로 인식하고는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제 앞에서 울음을 보였는데요. 


한동안 계속 죽음에 대한 감정을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어요.


엄마인 저로서는 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주느냐가 큰 숙제가 되었고요.


그렇게 만난 그림책 <상자 속으로 들어간 여우> 덕분에 저희는 어떤 답을 찾았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숲속 빈터에 늙은 여우가 나타났어요.

자기 몸집만한 상자를 가지고요.

몹시 피곤하고 지친 늙은 여우는 이내 잠이 들었고 숲에 살던 토끼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다가갔지요.

상자 안에는 뭐가 있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 자기들을 잡아 먹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잠에서 깬 늙은 여우는 큰 소리로 너무너무 배고프다고 말하고 이 소리를 들은 토끼들은 무서워서 바들바들 몸을 떨어요.


늙은 여우는 늙고 이빨이 다 빠져 토마토 수프만 먹는다며 토끼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러면서 토끼들에게도 토마토 수프를 권해요.



모두가 주저하는 사이, 호기심 많은 흰토끼만 겁도 없이 다가가 맛을 봐요.


그렇게 토끼들과 여우는 서서히 친해지고 늙은 여우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토끼들에게 들려줍니다.


토끼들은 늙은 여우의 삶을 듣고, 여우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함께 재미있게 놀아요.


여우와 토끼들은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어 서로를 돌봐주는 사이가 되는데요.


어느덧 찾아온 가을, 늙은 여우는 토끼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곧 떠날 것이라고 말해요.


어디로 가는지 흰 토끼가 묻지요.


"나도 모르지만, 분명히 좋은 곳일 것 같구나. 


너희가 내 생각을 해 주면 난 혼자가 아닐 테니까."


여우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고 자신이 가져온 상자 속에서 잠이 듭니다.


저는 여우의 죽음을 예상했기에 남은 토끼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는데요.


토끼들이 여우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남은 자들의 태도가, 남겨진 이들의 계속되는 삶이 아직은 저의 삶에 가깝다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토끼들은 말이죠.


밤새 여우의 곁을 지키며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자신들의 온기를 전했습니다.


날이 밝자 땅을 파고 조심스레 상자를 묻으며 떠난 이가 편히 누워 있을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어요.


함께 이별의 노래를 부르며 울음에 음표를 달아 여우가 있는 그곳까지 띄워 보내고요.


토끼들의 노랫말 속의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토끼였다는 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는데요.


태어나 생명을 얻은 모두가 결국은 죽음을 향해 함께 가는 동무였음을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죽음을 건너야 하는 우리들은 먼저 간 이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겠구나 싶더라구요.


죽음이라는 문을 죽은 자와 남은 자가 함께 통과해 가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에요.


함께 책을 본 아이는 여전히 투명한 슬픔이 글썽글썽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 슬픔을 제가 없앨 수는 없지만 아이는 저와 약속을 했어요.


우리가 죽음을 만나게 되더라도 함께 손을 잡고 그 문을 통과하기로요.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기로요.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것들은 그렇게 영원히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그림책 <상자 속으로 들어간 여우>


이제는 저도, 아이도 죽음과 손잡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