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좋아 웅진 당신의 그림책 3
하수정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오랗게 반짝이는 햇살이 쏟아지는 공원 놀이터 그네.

할머니 한 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앉아 계시네요.

제 눈에는 마치 연극 무대에서 멋지게 조명을 받으며 주인공이라는 존재감이 반짝이는 것 같아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데요.

우리가 아는 흔한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백발의 파마머리와 꽃무늬 바지가 어쩜 저리도 찰떡인지 싶네요.

하지만 역시나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할머니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아닐까요?

무엇이 이토록 할머니를 미소짓게 했는지 그림책 <지금이 딱 좋아>로 들어가 할머니 옆 빈 그네에 앉아 보겠습니다. ^^



'딸깍'

주름진 손이 불을 끕니다.

연극 무대의 조명이 꺼지듯이 컴컴한 어둠만이 남았네요.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꺼내놓기 싫은 어떤 것처럼 숨기는 것 같은데요.

누구에게나 숨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할머니의 마음이 꼭 제 마음 같이 느껴집니다.



홀로 사는 할머니는 집에 틀여박혀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을 보며 여기서 다 보이니 굳이 밖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하시네요.

하지만 알고 계실 거예요.

방 안에서 보는 세상과 밖에 나가서 직접 부딪혀 보는 세상이 다름을요.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분이니 말이지요.

그럼에도 할머니를 방 안에 꿈쩍 못 하게 앉혀 놓은 것은 무엇일까요?



혼자인 할머니는 집 안 물건들에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주고는 다정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세요.

할머니는 추억 속에서,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시간을 복기하며 그리움을 꺼내보는 재미로 하루 하루를 보내지요.

그렇게 자신의 세상 속에서 여기가 딱 좋다고 지금이 딱 좋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꿈 속에서 깨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고 이를 보다 못한 집 안 물건들이 소동을 일으키지요.

그 난리법석에 아랫집 총각과 경비 아저씨 그리고 요양보호사까지 출동을 하게 돼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애순 씨!"

그렇게 할머니는 이름과 함께 자신을 되찾아요.

그리고 마침내 마음 속으로 주먹을 꼭 쥐고서 나갈 준비를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나가는 두근두근 할머니의 외출에 저도 따라 주먹을 꼭 쥐게 되는데요.

할머니는 세상 밖에서 어떤 일들을,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요?


혼자 사는 고애순 할머니는 스스로 그리고 무관심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킵니다.

방 안에서 홀로 좋았던 시절을 끌어 안고 그리워하며 나이가 들었다고, 더 배워 뭐하느냐고 핑계를 대며 갇혀 있기를 택하지요.

저도 한때 늙어간다는 사실에, 쓸모없는 존재 같다는 자격지심에 마음이 작아지고 닫히는 순간이 있었어요.

모두가 그런 순간과 눈을 마주친 적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대부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꼬옥 감은 눈을, 꼬옥 쥔 주먹으로 문지르며 다시 한번 밖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우리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좋아. 여기가 좋아. 지금이 딱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고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거 같네요.

그런 용기를 내보라고 고애순 할머니가 따뜻하게 끓인 차를 보온병에 담아 먼저 문을 열고 나갑니다.

그리고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오늘의 파란색을 입은 하늘을 함께 보자고 하시네요.

따뜻한 차와 무해한 이야기 그리고 상냥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과 말이에요.

방그늘에 시들어가는 할머니에게는 나와도 괜찮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고애순'이라 이름 불러주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그림책 <지금이 딱 좋아>는 우리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고애순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성공했어요.

자, 이제 우리들 차례네요.

고애순 할머니처럼 움츠러든 당신이라면 주먹을 꼭 쥐고 문을 열고 나가는 용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한 당신이라면 할머니의 이웃처럼 누군가에게 다정한 관심을 회복해보자고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