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나날
알리스 브리에르아케 지음,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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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답답해 맑은 하늘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들어 올려다 본 하늘마저도 구름으로 가득한 날들.

그런 날들이 제게 찾아와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야 가득 구름이 낀 채 모든 것이 흐릿하고 답답해 어찌할 줄 모르던 내가 서 있는 표지에 그만 마음이 덜컥.

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손에 바이올린을 들고 고개를 든 여자의 모습이 서서히 제 눈동자 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그 곁을 스르륵 가볍게 지나치는 고양이의 움직임이 저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그림책 <구름의 나날> 속으로 앨리스가 따라 갔던 바쁜 시계토끼 대신 우아한 샴고양이를 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구름이 머릿속을 꽉 채운 채 모든 것이 뿌옇고 불확실한 기분.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사라지는지도 알 수 없어 그저 막막합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 흐르기에 무시하고 살아보려고도 하고, 이러다가 곧 사라질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요.



처음엔 그저 구름이라 가볍게 생각했지만 이내 가장 사랑하는 것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아마도 바이올리니스트를 버티게 해주던 음악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까지 말이에요.

모든 것이 엉망인 채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은 점점 더 어둡고 무거워질 거예요.

잔뜩 빗물을 머금은 무거운 솜뭉치 같은 구름처럼요.



나를 짓누르던 습하고 눅눅한 구름은 결국 넘쳐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습기를 밖으로 흘려 보내면서 조금씩 가벼워지기를 기다리는 일.

무리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하다 넘어지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기다리는 일.

어쩌면 우리에게 구름의 나날이 찾아왔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그것인지도 몰라요.



저의 경우에는 산후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를 벗어나려고 좋아하는 것을 무리하게 유일한 휴식시간에 한 게 화근이 되어 번아웃 상태에 빠지게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그 어느 것 하나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꽤 긴 시간을 보냈는데요.

서서히 정말 아주 서서히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느리지만 구름의 나날들을 뒤로 하고 문을 열고 나올 수 있게 되었지요.

길고 긴 나의 기다림과 더불어 제 곁을 지켜준 고마운 기다림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내가 구름에 짓눌리지 않게 문 밖에서 기다려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과 사려깊은 다정한 기다림, 바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세 마리 고양이처럼 말이에요.



이 책을 보는 모두가 주인공이 이대로 구름에 갇혀버린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에 주먹을 꼭 쥐며 볼 것만 같은데요.

<구름의 나날>을 보며 저는 맑게 갠 바이올리니스트의 얼굴을 마주하기 전 구름 속에 갇힌 바이올리니스트의 얼굴을 처음부터 계속 볼 수 있었어요.

제게도 구름이 찾아온 날들이 있었기에 말이에요.

구름 속 얼굴은 누구의 얼굴도 아닌 바로 제 얼굴이었거든요.

그래서 비로소 마지막에 가서야 크게 숨을 내쉬며 꼭 쥐었던 주먹을 풀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될 것 같다 생각하게 되네요.

구름의 나날은 느닷없이 모두를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림책 <구름의 나날>이 더 고맙고 소중합니다.

이 책이 구름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불어오는 다정한 미풍일 테니 말이에요.

빛바랜 듯한 그림은 담담하지만 섬세한 터치가 아름답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우울이나 무력감 또는 번아웃 같은 마음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름이라는 존재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은 작가님의 다정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덕분인 것 같네요.

언제 어디서 불어온지도 모를 누군가의 다정한 날숨에 혹은 막혔던 숨을 토해내는 듯한 나의 한숨이 구름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기를 바라봅니다.

구름이 떠나간 자리에는 향기로운 꽃향기와 다정한 이들의 온기가 가득할 거예요.

이제 구름이 찾아와도 괜찮아질 수 있음을 알기에 구름의 나날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림책 <구름의 나날>을 건네고 싶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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