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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당 ㅣ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평점 :
옥춘당을 아시나요?
어린 시절 제삿상에 올라가는 음식 중에서 단연코 제 시선을 사로잡던 알록달록 동글납작한 사탕.
빨강, 하양, 초록, 노랑, 분홍 색색의 빛깔도 매력적이었지만 알싸하면서 달콤한 박하맛은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듭니다.
어린 저를 생각해 할머니가 챙겨두셨다 따로 손에 쥐어주시던 옥춘당은 그냥 사탕이 아니라 제게는 사랑이었지요.
그런 옥춘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정순 작가님의 <옥춘당>
옥춘당 하나를 입에 넣고 살살 녹여 먹으며 이야기를 열어 봅니다.
빼꼼.
오늘의 주인공 고자동 씨와 김순임 씨.
두 분 이야기가 궁금해 펼쳐 보았는데 도리어 자신들 이야기가 궁금한 제가 궁금한 아이 같은 표정의 두 분.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스며나오고 무장해제되는 기분입니다.
평생을 서로 아끼고 살아온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을지 이 장면 하나로, 닮아 있는 두 사람의 표정만으로 그냥 다 알 것 같네요.
<옥춘당>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데요.
두 분의 만남부터 손녀인 고정순 작가님의 눈에 비친 알콩달콩하고 애틋한 사이를 그린 '오줌은 두 칸 똥은 세 칸',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그리고 조용한 치매 환자가 된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머무를 수 없는', 요양원에서 할아버지 곁으로 가신 할머니의 마지막을 들려주는 '금산요양원 13번 침대'로 이어집니다.
어린 손녀의 눈에도 유독 사이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전쟁고아였던 두 사람은 서로가 전부였기에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습니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와 낯 가림 심한 남편바라기 할머니 댁에서 여러 번 여름방학을 보내며 손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두 분과 함께 보낸 그 여름이 고여 있던 그 집을 오래 오래 기억하지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돌아갈 집이었을 뿐만 아니라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에게 집이 되어 주신 분들이었어요.
기댈 곳 없었던 자로 살아본 할아버지이기에 세심하고 다정한 헤아림을 조심스레 건네실 줄 아셨답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건네준 세상 가장 어여쁘고 달달한 사탕이 바로 옥춘당이었어요.
그 마음을 알기에 할머니 역시 천천히 오래 오래 녹여 먹으며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를 머금고 계시느라 더 말없고 조용한 분이 되신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애틋하고 지극한 두 분의 사랑이 한없이 끝나지 않으면 좋았을 텐데요.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시고 치료 대신 일상을 살다가 돌아가십니다.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을 할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할머니는 말을 잃으셨습니다.
남편이었고, 사랑이었고, 전부였던 사람과 헤어지고 할머니의 시간도 멈추었습니다.
소중한 기억을 품고서 살아가기에 지금의 시간은 계속 멈추지 않고 흘러가니 말이지요.
조용한 치매 환자의 삶을 택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사랑인 동그란 옥춘당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할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할아버지를 만나던 날의 할머니는 분명 행복하셨을 거예요.
세상에 서로가 전부인 사랑.
처음에 저는 그 사랑을 잃은 순간의 아픔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전부를 잃은 순간 나도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들여다 보니 그렇게도 온전하게 서로가 전부인 사랑을 한 두 분의 사랑이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진실로 다정하고 따뜻해서 두 번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나눈 두 분의 삶이 옥춘당이라는 사랑의 맛으로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어요.
옥춘당을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될 두 분의 사랑.
만약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을 몫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면 이 두 분은 사랑이 제 몫을 다한 삶을 사신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분의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 사랑, 후회없는 사랑이기도 했을 거예요.
과연 그 누가 후회 없다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있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제가 이 분들의 사랑을 몰랐기 때문이겠죠.
두 분이 좋은 곳에서 두 손 꼭 잡고 계실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이 책 곳곳에 그려진 서로를 온전히 사랑한 두 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네요.
역시 옥춘당은 사랑이고, 옥춘당의 맛은 사랑의 맛입니다.
사랑은, 사랑은 이런 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거겠죠.
온전히 사랑으로 사랑을 한 두 분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랑을 천천히 녹여 먹고 싶네요.
당신에게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예쁘고 동그란 것으로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