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 외 옮김 / 오후의소묘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도 아니고 고양이와 결혼을?

이건 정말 궁금해서 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그림책이 아닌가요!

세상에 어떤 쥐이길래 혹은 어떤 고양이이길래 둘은 결혼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저는 정말 상상이 안 됩니다.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도대체 어떤 그림책일까요?



깔끔하고 성실한 쥐 한 마리가 등장하는군요.

매일 같이 열심히 쓸더니 어느 날 동전 하나를 줍고 고심 끝에 양배추를 사서 아늑한 집을 만들기로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마련한 집 덕분에(?) 여러 동물들로부터 청혼을 받습니다.

쥐의 결혼 조건은 단 하나, 노래를 잘 부를 것!

자, 과연 누가 쥐의 집에서 살게 될까요?

갸르릉 갸르릉 가장 연약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장 작은 새끼 고양이와 결혼하는 쥐.

'둘은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을 거예요.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죽을 위험에 빠진 쥐를 간신히 구해낸 고양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쥐는 상처를 입지요.



작고 연약한 새끼 고양이는 쥐의 상처를 꿰매줄 실을 얻으러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계속되는 요구들을 따라가며 고양이는 몸집이 점점 불어나지요.

거대해진 고양이는 이제 더이상 쥐가 결혼해 함께 살고 싶어하던 새끼 고양이가 아니에요.

이들의 결혼은 파국을 맞습니다.

여기까지는 스페인의 설화 '잘난 체하는 쥐'로 부터 변주된 다양한 이야기들 중 하나를 작가님들이 다시 쓴 것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제 그 뒷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작가님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요.



고양이와 쥐.

그렇습니다.

이들은 먹고 먹히는 관계 속의 존재들인 거죠. 잠시도 함께 있는 것이 불가능한 관계.

사랑이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어쩌면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앞서 잠시 했더랬습니다. 이들의 결혼이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 걸리더니 결국은 끝이 정해진 시작이었네요.

적어도 이 결혼에 사랑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결혼의 끝이 새드 엔딩인지, 해피 엔딩인지는 보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할 것 같은데요.

어쨌든 결혼이라는 관계는 끝났지만 각자의 삶은 계속됩니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으로 마음 속에서 고양이와 결혼을 끊어내요.

자세히 방을 살펴보면 고양이와 쥐의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에 등장했던 물건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림을 그린 비올레타 로피스 작가님이 단순화된 그림 속 사물로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관계와 사건의 진열장 같은 집을 떠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 제게는 마치 쥐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두 작가님이 옛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이 이야기는 그 옛날 끝나지 않은 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그래서 우리에겐 새로운 결말이 필요했지요.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서로 상처 주고 상처 입기 마련이지만, 존재가 삭제당하는 순간 그 관계에서 로그 아웃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책 속의 여자가 머리카락을 싹뚝 잘라내고, 관계 속에서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뿐하게 떠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그림책의 새로운 결말이 마음에 드네요.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