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미누스 :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
레베카 도트르메르 지음, 이경혜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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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깊은 눈동자, 쫑긋 위로 솟은 크고 길쭉한 두 귀를 가진 토끼 한 마리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덩달아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이 작은 토끼의 사려 깊고 다정한 성격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이 아이는 그림책 <자코미누스>의 주인공 자코미누스입니다.

커다란 그림책 표지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니 이 책은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군요.

자코미누스가 엄청나고 대단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도 일으킨 걸까? 궁금해집니다.



모든 존재는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름을 갖게 되지요.

저와 여러분이 그랬듯이 자코미누스의 삶도 그렇게 시작되는군요.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존재로 지금 이 시간 속에서 연결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듯이요.

우리는 다르지만 또 이렇게 닮아 있고 닿아 있네요.

어쩌면 이 그림책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자코미누스는 달나라 여행을 다녀오다 계단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다치는데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자코미누스는 평생 목발을 짚게 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잃거나 얻고, 어딘가를 다치거나 회복하고, 어디에선가 출발하거나 도착하고, 누군가를 보내거나 만나면서 자코미누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채워가지요.



자코미누스는 날마다 조금씩 뭔가를 배우게 됩니다.

살아가는 방법들, 존재하는 이유들, 다른 언어의 울림들, 소박한 행복의 의미 같은

크고 작은 삶의 이야기들을 매일 찾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기도 하면서요.

작가님의 빛바랜 듯한 사진 같은 섬세한 그림 한 장 한 장과 짧지만 선명한 문장들은 달의 인력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 보게 만들고 길고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젊은 자코미누스는 미쳐 버린 세상을 마주합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영어책 <밤의 검은 기사>와 똑같은 이름의 검은 기사호에 올라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나가지요.

자코미누스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전쟁에서 승리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는 또 수많은 것들을 기다렸어요.

자코미누스는 사랑을 하고, 아빠가 되고, 치열한 삶의 열차에 올라타 되풀이 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힘든 시기를 견디지요.

"나는 이제 모든 걸 이해해. 시간은 흘러가고, 우린 변하거든. 그게 전부야."

모든 것을 이해한 자코미누스는 더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저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을 갖기 어려울 때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하라는 자코미누스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말씀과 자코미누스의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작가님은 삶 속의 자코미누스를 멀리서, 자코미누스의 삶을 가까이에서 오고 가며 '온 힘을 다해'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그려놓았는데요.

그래서 한 존재의 삶이 그것대로 고유하면서 소중한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자코미누스.

그런 자코미누스의 일생을 따라가며 그림책을 들여다 보는 자신의 삶을 포개어 봅니다.

내 삶이라는 역사는 참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사랑스럽고, 평범하지만 따뜻하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만들어 주네요.

평범한 날들이 주는 충분한 행복을 만끽한 토끼 자코미누스의 일생을 담은 그림책 <자코미누스>

쌍둥이 그림책처럼 내 이름과 내 얼굴이 놓인 내 일생을 담은 그림책을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 안은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요?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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