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고양이
다케시타 후미코 지음, 마치다 나오코 그림, 고향옥 옮김 / 살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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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따뜻해지니 식물들도 동물들도 모두 얼굴을 빼꼼 내밉니다.

따뜻해진 대기 속을 거닐며 여기저기 살짝 살짝 보이는 반가운 얼굴들과 낯선 얼굴들에 인사를 건네다가 깊은 초록 눈으로 말갛게 이쪽을 바라보는 줄무늬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네요.

신비로운 눈빛이 매력적이면서도 잔뜩 웅크린 몸은 낯선 나를 경계하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미안함과 호기심으로 조심스레 <이름 없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골목에 몸을 숨기고 밝고 환한 도로를 내다보고 있는 고양이의 뒷태를 보는 순간,

우리는 고양이의 입장에서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 속으로 초대됩니다.

궁금했던 고양이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고 고양이는 자기 소개를 시작하는군요.

아무도 이름 지어 준 적 없는 이름 없는 고양이라고 말입니다.


이름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동네의 이름이 있는 고양이들을 부러워해요.

신발 가게 고양이 레오는 사자란 뜻의 자기 이름을 자랑하고,

서점 고양이 씩씩이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라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고,

채소 가게 고양이 꼬맹이는 작았던 어린 시절에 불리던 이름을 조그 부끄러워 하고,

우동 가게 고양이 우동이, 사이좋은 빵집 고양이 해님과 달님이, 아주머니한테는 미미로 아저씨한테는 동그리로 불리는 이름이 두 개나 되는 카페 고양이, 스님들이 착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보살이라고 불리는 절 고양이까지 모두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가 이름을 갖고 싶어 하자 보살이가 말해요.

좋아하는 이름으로 직접 지어보라고 말입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는 동네를 돌며 좋아하는 이름을 찾아 보지요.

그렇지만 남은 소득이라고는 개에게도, 꽃에게도 있는 이름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고양이를 쫓아내며 지르는 소리들 뿐입니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외롭고 쓸쓸한데 이제 비까지 내리네요.

공원 의자 아래 몸을 웅크리고 비를 피하고 있던 이름 없는 고양이를 향해 다가온 누군가의 다정하고도 상냥한 목소리.

바로 그때 이름 없는 고양이는 깨닫습니다.

자기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말이지요.


이름이 부르는 존재와 불리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습니다.

모든 존재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더 의미있고 중요하다는 사실도 말이에요.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부모님.

내가 이름을 붙여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아이들.

내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과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 내게 부를 이름들이 있는 따뜻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도요.

그들의 존재로 인해 관계 속에서 내 존재가 더 선명해지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것도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줌으로 서로가 더 애틋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그 따뜻한 이야기를 <이름 없는 고양이>는 참 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다가와 서서히 물들이듯 전달해줍니다.

우리 주변의 이름 없는 존재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일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부른다는 행위가 얼마나 의미있고 아름다운 일인지요.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를 때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 상대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들숨과 날숨이 오고가며 따뜻한 온기를 담은 그 이름이 그 존재에 닿는 순간 서로가 활짝 피어나 빛나는 우리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지금 당신 주변에 우연히 찾아든 이름 없는 존재가 있다면 잠시 눈을 맞추고 느껴보세요. 그리고 유일한 이름 하나를 소리내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참, <이름 없는 고양이>의 앞면지에 있던 많은 이름 없는 고양이들이 마지막 면지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이름들을 갖게 되었는지 하나씩 살펴 보세요. ^^ 이 세상에 이름 없는 존재들이 이름을 가진 존재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우리들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이름을 가졌나요? 그리고 당신은 어떤 이름들을 부르고 있나요?

당신에게 부를 이름이 참 많았으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당신을 다정하고 따듯하게 부르는 존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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