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순정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에나 영화에서나 보던 타임머신이 책으로 짠~하고 나타나서는 40대 중반을 향해 달리는 아줌마를 15살 여중생 시절로 타임 리프시켜버렸다. 그 문제의 타임머신 책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바로 <안녕, 나의 순정>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라는 부제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아니 표지 한 가운데 떡하니 별박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우리를 바라보는 순정만화 주인공만 봐도 감이 딱 오셨을 터!!

나 역시 이 책을 펴자마자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친구와 만화방에 갔던 날의 설렘이 일순간 확 되살아났다.

공부 잘하는 범생이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저 학교와 집만 오가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그런 조용한 여학생이었기에,

만화라는 세상 그리고 지금이야 웃음이 나지만 내게는 일탈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던 만화방(당시는 지금 같이 가족도 다함께 가는 건전한 카페 분위기가 아니었다)에 입성하던 그날 그 시절의 어리고 순수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준 본격 한국 순정만화 에세이 <안녕, 나의 순정>

'어쩌다 어른'의 이영희 작가님이 쓰신 본격 만화 덕후 인증 에세이 정도가 아닐까 추측하며 정말로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의 세계로 들어갔다.

만화라는 매체로 이야기하지 못할 장르는 없음을 보여준 황미나 작가님, 어린 내가 알지 못하는 삶의 고단함과 가치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게 해주었던 신일숙 작가님과 김혜린 작가님의 작품들을 시작으로 역사와 맞물려 인간의 삶과 특히 여성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 많은 의문의 씨앗을 품게 된 것은... 아!!! 바로 이분들 작품 덕분이었구나!!!

학원 만화지만 독특한 개성과 평범한 보편성을 두루 갖춘 이빈 작가님, 순정만화의 표본이라할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이은혜 작가님,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한혜연 작가님의 작품을 보았기에 내가 주변 사람들과 나눈 우정과 사랑의 순간들이 더 반짝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가 하면 세련된 그림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탁월해 그 시절의 내가 필사를 하게 만들었던 박희정 작가님, SF 순정 만화하면 바로 이 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강경옥 작가님, 정말 쿨하고 핫한 인물들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유시진 작가님, 세상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게 해 준 문흥미 작가님의 작품들은 상처받을 때마다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를 다독여주고 좁디 좁은 내 생각의 틀을 넓혀준 스승이고 친구였다.

낯선 세계와 낯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꿈을 만나게 해 준 나예리 작가님, 파격적이면서도 말 그대로 멋진 그러나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드는 천계영 작가님의 작품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힘을 내라 말해주었다.


내가 10대에 마음 속에 그리고 내 일기장 한 귀퉁이마다 적어두었던 작품 속 인물들의 대사들을 40대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참, 신기하고도 반가운 이 만남이라니... 무엇보다 참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돌이켜 보건대 어른들에겐 불온해 보였을 만화방과 시간 낭비처럼 보였을 만화책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생을 배우고 어른이 되는 다리를 건너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 나의 순정>을 그저 누군가의 순정만화에 대한 사적인 기록이라만 볼 수 없는 것이 이 책에 나오는 작품 하나 하나가 가진 매력과 의미가 단지 한두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없기에 한국 순정만화의 역사이자 그 순정만화가 키워낸 순정의 역사를 만나는 기회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부디 순정만화에 대해 그리고 소녀들의 순정에 대한 오해가 풀릴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가 그랬듯이 나 역시 나의 순정에게 참으로 반갑게 안녕을 건낼 수 있어 참으로 말랑달콤한 시간이었다. 아..... 만화가 보고 싶다. 그것도 순도 100%의 순정만화를 말이다. 여담이지만 이진경 작가님의 <사춘기四春記>가 꼭 완간되기를!! 작가님의 사춘기가 완간되어야 내 사춘기도 종지부를 찍을 것 같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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