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알마 인코그니타
올리비아 로젠탈 지음, 한국화 옮김 / 알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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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임사 체험.

나에게는 너무 낯선 것들.

소재도 낯설었지만 올리비아 로젠탈이라는 작가도 그리고 그녀의 연작소설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의 서사 방식도 낯설었다. 낯선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낯선 그녀의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호기심과 부정적인 적대감이 읽는 내내 엎치락 뒤치락할 수 밖에 없었는데, 비현실적인 픽션과 사실적인 논픽션이 교대로 너울거리며밀려드는 통에 정신을 못 차리고 막 허우적대며 읽은 기분이다. 뭐랄까?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기분, 죽음과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긴장도가 꽤 높은 상태에서 글을 읽게 된다. 희박한 공기 탓에 그러니까 이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유일한 단서 같은 것들을 찾아가며 그것들을 붙들고 쫓고 쫓기는 순간들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얕은 호흡마저도 놓치지 않으려는 어떤 초조함과 절실함이 가득했기에 책을 내려놓는 순간 녹초가 된 기분을 느낀 낯선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도주', '집에서', '추격', '내 친구들', '귀환'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

극한의 상황에서 동료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도주'

"나는 뒤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다시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죽는 위험은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버린 것을 더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비난과 호출처럼 보이는 그녀의 뜬 눈을 더는 공포에 질린 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갈 때쯤이면 몇 킬로미터는 지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땅에 있을 것이다. 다른 얼굴, 다른 언어, 다른 벌린 입, 다른 친숙한 모들과 함께. 미지의 것이 나를 과거로부터 영원히 해방시켜줄 것이고, 적어도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를 죽음에 처하게 하는,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무엇으로부터의 '도주', 적대적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 메커니즘은 '도주'라는 방식으로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가족 중 한 구성원 그것도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나지 않는 이의 죽음을 수용하고 혼자 남겨진 집에서 두려움에 대응하는 어린아이의 심리를 따라가는 '집에서'

"나는 비밀에 부쳐졌던 모든 것들이 내 앞에 나타나고 완전히 드러난 세상을 상상했다.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면, 묻히거나 하지 못했던 말들, 고백, 비난, 약속, 나쁜 기억, 악몽, 쓰레기, 찌꺼기, 유령, 아바타, 분신과 악마, 이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고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내 의식이 이 나머지 것들에 의해 항시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 상상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덮친 감정의 폭발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눈을 감았다."

죽음을 직감하는 최초의 경험이 언제였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쩌면 무의식 속에 우리는 죽음과 함께 세상에 나온 존재일 것이다. 언제 죽음이 덮쳐도 이상하지 않을 연약한 존재는 그저 눈을 감는 게 최선이리.


'추격'에서는 유년 시절에 누구나 경험하는 술래잡기에 대한 이야기와 범죄로 인한 죽음과 죽음 이후의 신체적 변화들에 대한 보고가 교차적으로 서술된다. 술래잡기라는 놀이에 담긴 의미와 사후경직이 오는 신체적 변화에 대한 건조한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사라지고 싶으면서 사라지고 싶지 않은 숨어야 하는 이들과 숨은 이를 찾아내야만 살 수 있기에 또 다른 절박함에 분노하는 술래의 긴장 관계는 삶과 죽음의 관계와 닮아 있다.

"죽음은 한계도, 경계도 없었고, 그것은 나인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예고 없이, 내가 무기를 가질 새도 없이 다가왔고, 모든 형태를 띠고 있어서, 대항해 싸울 수 없었다. 나는 그것에 대항해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는 죽음에 의해 자신이 열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더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견딘다 우리는 죽음을 기다리고, 가끔은 그것을 부른다."


'내 친구들'에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환대, 머무름과 상실 같은 다양한 위험을 감수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와 알리스 P.라는 여자의 임사체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 한 사람 뒤에 다른 한 사람이, 그리고 가끔은 동시에 그들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떠났다. 다른 이들고 왔고 그들도 떠날 것이다. 나는 그들 모두를 맞이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환대가 결정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주 격렬한 말싸움, 도주, 무시, 일시적인 부재와 영원한 실종 이후에도, 그들은 더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더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 나의 내부에 그들을 쫓아내기 위한 나의 시도보다 더 끈질기게 존재할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종지부를 찍고 혹은 그들이 그렇게 하고, 나는 뽑아내고 혹은 그들이 뽑아내고, 나는 자르고, 그들이 자르고, 나는 파괴하고, 그들은 저항한다. 따라서 나는 그들 모두를 간직하고,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들에게 속하는 것에 동의한다."


죽은 언니와의 숨막히는 숨바꼭질 후에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귀환'.

"은하의 밤에서 이미 오래전에 꺼져버린 먼 옛날 별의 강렬하고 미미한 빛을 경의에 차서 가리키는 것처럼, 나는 그녀의 순간적인 광채가 나타나는 공간과 시간을 가리킬 것이다. 그녀의 부름에 대답할 수 없는 대신, 나는 내 방식대로 그녀에 대한 흔적을, 작고 개인적인 흔적을 남길 것이고, 이것은 그녀를 버리지 않기 위해 내가 찾아낸 유일하고, 내면적이고, 늦은 동시에 하찮은 방법일 것이다."

늘 우리 곁에 널린 삶과 죽음, 그 사이를 오고가며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들이 육체를 가진 존재들과 교류하는 방식들을 지켜보는 일의 낯섦이 주는 생경함이 어째서인지 당연한 동시에 놀랍다.


죽음은 그저 불이 꺼지듯 완전한 정전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던 내게 죽음과 그 다음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다른 감각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해준 소설,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프랑스 문단에서도 올리비아 로젠탈이라는 독보적인 장르로 분류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 소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겠다. 나를 둘러싼 적대적 상황에서 연약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주관적인 체험과 객관적인 과학적 분석으로 직조된 이 소설을 읽고 있자니, 삶과 죽음이 어떤 가로막힌 단절도 아니며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흐름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고 끔찍하고 눈물겹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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