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는 코뿔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찰리는 한 때 피해자였고, 슬픔과 고통 속에 있었지만 이제 검피 아저씨와 함께 사는 걸 좋아하고, 자기 일을 좋아하지요. 그리고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검피 아저씨가, 존 버닝햄 작가님이 그리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검피 아저씨의 코뿔소>는 작가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점도 그 의미가 크지만 담고 있는 메세지가 갖는 의미 역시 아주 커다랗고 따뜻합니다. 생명을 구하고 돌보는 일, 모두가 함께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를 거쳐 <검피 아저씨의 코뿔소>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있어요. 특히나 <검피 아저씨의 코뿔소>에는 앞선 두 이야기가 그림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어려움이 닥치자 검피 아저씨가 가장 먼저 달려가 답을 구한 것은 힘이 있고 아는 것이 많은 어른들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이었다는 건데요. 우리가 종종 초심으로 돌아가자 말하곤 합니다. 제게는 그 초심이 동심으로 보여요. 처음 마음, 사람의 첫 마음이란 아이의 마음, 아이였을 때의 마음이 아닐까요? 이 작품은 작가님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처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더 멋지고 소중하네요.
존 버닝햄 작가님,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을 보여주는 <검피 아저씨의 코뿔소>라는 선물을 주셔서 정말,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