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그림책
몰리 아이들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고요한 푸른 바닷속으로 따뜻한 빛의 커튼이 너울거리고,

푸른 바다를 닮은 푸른 색의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고 그 한 가운데 조개의 연한 속살을 닮은 선홍색 빛깔의 지느러미를 가진

작은 인어가 앉아 있습니다. 작지만 하얗고 은은한 빛을 머금은 무언가를 손에 들고서.

그림책 <펄>은 제목만으로도 여러 가지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진주라는 아름다운 보석.

'달의 눈물'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인어의 눈물'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아마도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고통을 수반한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조개의 말랑말랑한 속살에 파고든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계속해서 찔러대기에 이를 자신의 피 같은 탄화칼슘을 분비해 덮고 또 덮고 그렇게 수천 수만 번의 피흘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바로 진주랍니다.

어쩌면 진주의 또 다른 이름은 '조개의 피'나 '조개의 눈물'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진주가 탄생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 그림책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사실 그런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이 그림책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거든요.

자, 그럼 그림책 <펄>의 진짜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펄'

'펄'은 바닷속 작은 인어의 이름입니다.

모든 인어들은 제각각 특별한 일을 하는 임무를 갖는데,

펄은 깊은 바닷속의 거대한 생물을 보호하는 일을 꼭 하고 싶었지요.

펄은 엄마에게 자신도 이제 누군가를 도울 만큼 다 컸다며 때가 왔다고 합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펄이 보살펴야 할 아주 소중한 것을 보여 주겠다고 하지요.

그런데 펄의 기대와는 달리 엄마가 펄에게 맡긴 것은 수도 없이 많고 많은 모래알 중 작은 모래알 하나.

 


펄은 투덜대지만 엄마는 펄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펄, 가장 작은 것들이 때로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든단다."

엄마의 말과 함께 홀로 남겨진 펄은 실망과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 무거워진 마음을 때문에 아래로... 아래로... 자꾸 내려갑니다.

펄은 울다가 모래알을 매섭게 노려보기도 하고 꼭 그러쥐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순간 손가락 틈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펄은 얼른 손을 펴지만 그 빛은 사라지고 맙니다.

펄은 작은 모래알을 감싸듯 살포시 쥐었어요.

그러자 손바닥 안의 모래알은 반짝반짝 전에 없던 빛을 희미하게 띄었습니다.

펄은 매일매일 작은 모래알을 돌봐주고 그것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라면서 은은한 빛이 났지요.

그 빛은 점점 밝아졌고, 펄의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그것은 둥둥 떠올라 위로... 위로... 더 위로... 올라갔지요.

자, 과연 그것은 무엇이 되었을까요?


꼬마 인어 '펄'처럼 크고 멋지고 중요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거예요.

그리고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결국 그 일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을 펄의 모습에서 다시 보게 됩니다.

전 이 그림책의 여러 장면 중에서 모래벌판의 수백만, 수천만 모래알 중 오직 하나의 작디 작은 모래알을 펄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망연자실한 장면이 너무나 마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모래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지요.

펄의 손바닥에 놓인 작은 모래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작은 모래알은 펄의 깊은 슬픔도, 따뜻한 보살핌도 모두 펄의 가장 가까이에서 느꼈겠지요.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빛을 키워갑니다. 펄의 도움으로 말이죠.

수많은 작은 모래알 중의 하나였고, 작은 빛을 내다가 마침내 커다란 하나의 빛나는 무언가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향해 그 빛을 드러내지요.

이제 더이상 작은 모래알이 아니라 커다란 빛이 되어 모든 것 위로 그 빛을 비춰줍니다.

작은 모래알 역시 펄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이런 존재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펄과 함께 성장하며 커다란 빛이 되어 펄의 꿈을 이뤄줍니다.

내게 있는 가장 작은 것이 성장해 커다란 빛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만의 빛으로 키워가는 노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그림책 <펄>

'칼데콧 상'을 받은 작가답게 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그림이 참 많은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작은 무언가가 보여주는 놀라운 성장도 아름답지만 처음에도 그랬고 후에도 변함없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여러분 마음에서 반짝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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