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미움들 - 김사월 산문집
김사월 지음 / 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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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앞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대중가요와 아이돌의 화려함에 점점 식상해질 무렵 진심이 담긴 마음을 노래하는 인디뮤지션들의 목소리를 따라 어느덧 홍대 근처 소규모 공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꾸밈없는 투명함으로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대부분의 인디뮤지션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유독 귀를 기울이게 하는 노래들이, 다시 한 번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가수들이 있었다. 그런 뮤지션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김사월.

그 김사월이 하나 하나 눌러 쓴 진심을 담은 책 <사랑하는 미움들>

새 음반이 나왔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만났다.

역시나 김사월의 마음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고 어떻게 노래가 되었는지가 <사랑하는 미움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을 보기 전에 들어왔던 김사월의 노래가 더 또렷하고 선명해진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젊은 여자로 살아가는 김사월이 나오는 '1부 젊은 여자'에서는 스토커의 미친 눈빛에 쫓기기도 하고, 성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쓸데없는 관심이 부담스럽고, 욕망받는 존재와 자유로운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고, 외모에 대한 불만으로 다이어트약과 폭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하며 "오늘 외모를 덜 꾸밈으로 인해 내가 잃는 것도 있겠지만, 만약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주저할 것이 없다"고 꾸밈노동에 파업을 선언하고, 꾸미지 않는 힘을 믿고 싶어한다.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선택으로 해소"하고자 비거니스트로 살기 시작한 김사월의 모습에서도 그녀만의 강단이 느껴져 그녀가 더욱 좋아지기 시작한다.

'2부 누군가에게'는 김사월이 주변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하는 넋두리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김사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공간 '한 잔의 룰루랄라', 무대 위에서 처음 잊은 노랫말, 공연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전원 사망한 어느 밴드 이야기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요가와 발레를 하며 움츠러드는 몸에게 자꾸 기지개를 켜게 하는 노력과 조금 자신과 비슷한 몽상가 외할아버지와 그녀의 하루에 없어선 안 될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 대도시에 사는 이상한 낭만을 느끼게 하는 일주일의 5일은 출근하는 스타벅스 작업실, 그녀의 스물넷 그 자체였던 사람, 그녀의 애마 바이크, 계절과 자연의 손길에서 느끼는 그녀만의 감각들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사월. 친구처럼 툭하고 던지는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게 되고 공감하기도 하며 점점 더 그녀에게 다가간다.

'3부 너무 많은 연애'에서는 김사월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녀는 휘발성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꿈에 출연하는 옛 연인들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떠난 이가 오늘 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랑을 나누기를 바라고 수많은 연애만큼이나 남은 수많은 이별담에 더이상 궁금하지 않은 사랑을 말하다가도 여전히 나방처럼 영혼의 단짝을 찾아 헤매는 자신이 신기한 그녀. 자신을 세상에 보여주면서부터 누구도 사랑하지 않게 되어버린 가벼운 영혼의 김사월의 이야기는 내게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조금 더 가까워진 김사월의 조금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보는 것 같은 만남.

'4부 사월에게'는 김사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고백하는 정말 말 그대로 벌거벗은 자아가 들어 있다.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어하는. 그것도 제대로. 미술 실기를 준비하던 10대 시절의 기억들, '대기실에서 어서 마치고 싶기도 하고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고 싶기도 한 '공연 전의 기분은 그 솔직함에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와닿는다. 무엇보다 "나는 물건이 아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설거지를 하는, 선의와 비열함을 모두 가진 한 명의 살아 있는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줘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기분. 이제 누군가 오해했던 이야기들이 이해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김사월의 <사랑하는 미움들>을 따라 그녀의 속내를 한 장씩 넘겨보니 무대 위와 무대 아래에서의, 본명과 활동명 사이를 오고 가는 한 사람의 그녀가 뚜렷한 윤곽을 가진 실체로 다가온다. 그녀가 진심을 꾹꾹 눌러 쓴 탓일까? 마치 뒷 장에 남은 눌린 자국처럼 그녀의 진심이 마음 속에 남아 어느 날이건 내 마음을 어루만지다 그녀의 자국을 느끼고는 반가울 것만 같다.

그녀가 어디에서든 계속 그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들을 노래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런 자신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에선가 내가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기를, 그녀가 사랑하는 미움들을 노래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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