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이론 -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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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

제목만 보고서는 물리학 관련 글인가 싶었다. 물론 나는 이과 출신이라 괜찮을 거야, 요즘은 초끈이론이 대세지란 ^^;; 자기 최면을 걸면서 그 아래 조금 작게 적힌 글을 읽어본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란다. 아... 라켓의 끈을 말하는 거겠구나 싶어 살짝 긴장의 끈을 놓았다. ㅎㅎ

그랬던 내가 책을 보는 중간 중간 테니스 용어와 선수 검색을 하고 책의 마지막 장을 내려놓자마자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의 2006년 윔블던 결승 영상을 찾아 보게 되다니!!!

사실 스포츠라면 만화 <슬램덩크>의 농구에서 시작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축구 그리고 기아 호랑이들 좀 잘할 때 보는 가을야구 정도로 어쩌다 보니 대부분이 팀플레이인 경우였기에 '가장 고독한 경기'란 표현이 마음을 끌었다. 한편으론 그래서 내가 테니스에 관심이 없었나 싶기도 했지만 결국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을 보고나서는 테니스의 매력 그러니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말하는 테니스의 매력에 홀랑 빠져버렸다.

우선 저자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내게는 낯선 작가지만 그의 소설들이 20세기 말 미국 현대 소설의 최정점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다니 분명 대단할 것인데, 내게는 그와의 첫만남인 <끈이론>에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어 소설에서의 그의 말하기 방식이 어떠할지 예측이 되기도 하면서 혹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일종의 스포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끈이론>은 저자의 테니스에 대한 애증과 테니스를 빌어 말하는 인생관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다. 저자의 어린시절 테니스와 시작된 인연을 담은 '토네이도 앨리에서 파생된 스포츠', 트레이시 오스틴의 실망스러운 자서전에 대한 속상함(?)을 토로하는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 테니스란 세계에서 일종의 경지에 이른 마이클 조이스에 대한 '선택, 자유, 제약, 기쁨, 기괴함, 인간적 완벽함에 대한 어떤 본보기로서 테니스 선수 마이클 조이스의 전문가적 기예', 스포츠 산업에 대한 비판과 비아냥에 그 속내에 이런 것이 있었구나 싶어 눈이 확 떠지는 '유에스 오픈의 민주주의와 상업주의', 작가에게 테니스 그 자체인 페더러에 대한 찬사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에 이르기까지 테니스로 시작해 테니스로 끝나는 그야말로 테니스적인 책이다.

그렇다면 과연 테니스란 저자에게 무엇일까?

"단언컨대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 테니스는 신체 통제, 손과 눈의 협응, 재빠름, 최고의 속도, 지구력, 그리고 조심과 (우리가 용기라고 부르는) 놓아버림의 기묘한 조합을 필요로 한다. 두뇌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경기의 한 포인트에서의 한 번의 공방에서의 단 하나의 샷은 역학적 변수의 관점에서 악몽과 같다. 네트의 (가운데) 높이가 91.4센티미터이고 두 선수의 위치가 (비현실적이게도) 고정되었다고 가정하면 샷 하나의 위력을 결정하는 것은 각도, 깊이, 속도, 스핀이다. 이 요인들은 각각 또 다른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테면 샷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공이 네트 위를 지나는 높이에다 속도와 스핀을 아우르는 어떤 함수를 조합한 것인데, 공의 네트 위 높이 '자체'는 선수의 신체 위치, 라켓 그립, 백스윙 각도, 라켓 면의 기울기, 공이 실제로 줄에 닿는 시간 동안 라켓 면이 움직이는 3-D 좌표로 결정된다. 변수와 요인의 나무는 가지를 뻗고 또 뻗으며, 상대 선수의 위치와 성향과 그가 친 공의 탄도학적 특징을 고려하면 더더욱 뻗어 나간다"- 117쪽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묘사와 시선으로 정리되어 있어 그런지 더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된 수학 공식 같은 글이 아닌가 싶다.(물론 엄청난 한 문단 같은 한 문장도 등장하지만 ^^;;) 그래서 차가운 매력이 빛나는 것 같은데 또 애정을 표현할 땐 그 폭발력이 대단하다. 이것도 정확히 얼기설기 얽힌 씨실과 날실 같다는. 우리의 현존하는 신체가 가진 한계를 넘어선 선수들을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살짝 거슬리는 표현들도 있고 분명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란 작가의 편파적인 선수 애정 성향 역시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책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코트 위에서 라켓 들고 마치 테니스 랠리를 한 판 뛴 기분이 드는 것은 분명 이 책만이 가진 매력 때문이겠지.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직관만이 갖는 매력이자 장점을 미술관에서, 공연장에서, 야구장에서 이미 경험한 나 역시 언젠가 꼭 테니스장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테니스와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에서 드러나는 정확한 직관 같은 통찰을 어쩌면 나도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 깨닫게 될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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