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고래
트로이 하월 지음, 리처드 존스 그림, 이향순 옮김 / 북뱅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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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

끝이 보이지 않는 정말 넓고 바닥이 닿지 않는 그 깊음에 그 거대함에 압도되었던 기억.

저의 바다는 그런 바다였습니다. 그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런 바다.

바다를 되뇌이다 보면 그 이름이 내는 소리처럼 정말 뭐든지 다 받아 줄 것 같은 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답답한 일이 생기면 바다를 보고 싶어하고, 더운 여름 휴가를 바다에서 쉬려고 떠나는 걸까요?

뭍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토록 매력적인 바다인데 물 속에 사는 생물들에겐 그야말로 완벽하고 따뜻한 집이자 고향이겠죠. 그런 바다에 잘 어울리는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어찌 된 일인지 어항에 갖혀 있고 그런 고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가 그려진 표지의 <바다로 간 고래>

고래와 소녀가 어항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맞추고 있네요.

둘은 눈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두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하며 첫 장을 넘기자 두 눈을 정말 파랗게 물들여 주는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집니다.

첫면지를 가득 채운 파랗고 파란 바다를 보니 마음의 창문을 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저 멀리 고래가 숨구멍을 뿜어내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일주일의 한 가운데 있는 수요일처럼 세상 한 가운데 있는 고래 웬즈데이.

세상 모든 것이 웬즈데이 주변을 빙빙 돕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항 속에서 아주 높이 뛰어올라 저 먼 곳에 있는 파란 무언가를 보았지요.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파랑.

그것을 보려면 아주 높이 뛰어올라야 하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답니다.

파랑이 보고 싶어 자꾸만 뛰어오르는 웬즈데이.

그런 웬즈데이를 보며 사람들은 묘기를 부린다 생각해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페이즐 무늬 원피스를 입은 파란 눈의 파이퍼가 다가와 가르쳐 줍니다.

어항 속이 아닌 바다가 바로 웬즈데이의 진짜 집이라고 말이지요.

그때부터 웬즈데이의 슬픔은 점점 깊어갑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오르는 웬즈데이.

과연 그 도약은 웬즈데이를 바다로 데려갔을까요?

어항에 갇혀 바다를 꿈꾸는 고래 웬즈데이.

글에도 나오지만 일주일의 한 가운데. 어쩌면 힘내서 시작한 월요일부터 분주한 화요일을 지나 힘이 빠진 수요일 같기도 하고 우리말로 물이 들어간 수요일과 물에 사는 고래의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꿈꾸며 슬퍼하는 웬즈데이의 눈물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사실 웬즈데이의 이름을 듣자마자 자연스레 마더구스의 노래가 떠오르더군요. 아이가 태어난 요일로 아이의 운명을 점쳐보는 노래에서 Wednesday`s child id full of woe라는 구절. 고래 웬즈데이가 자유를 꿈꾸며 바다를 그리워하는 그 슬픔이 마치 예정된 운명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항 속 세상이 전부라 생각하면서도 우연히 본 자유라는 바다를 향한 파랑앓이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네요.

자신이 살고 있던 어항을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 파이퍼가 알려주기 전까지 진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몰랐던 웬즈데이.

그래서 높이 뛰어올랐다가 우연히 본 파란 바다가 자꾸 보고 싶고 그리웠던 웬즈데이.

어항 속 웬즈데이의 모습에서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라는 어항, 구태의연한 습관과 규칙 같은 것들 안에서 뱅뱅 돌며 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바다라는 자유를 찾아서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오른 웬즈데이.

자유라는 바다를 찾기 위해서는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라야 하겠지요.

웬즈데이가 그러한 것처럼 저도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라 바다라는 파란 자유를 찾고 싶네요.

<바다로 간 고래>는 2011년 발매된 라디오헤드의 앨범 <The King of Lims>에 수록된 곡 <Bloom>에서 영감을 받아 트로이 하월 작가가 글을 쓰고 리처드 존스 작가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헤드의 팬이기에 더 반가운 그림책이기도 한데 2018년에 BBC에서 방영한 Blue Planet II의 사운드 트랙으로 한스 짐머만과 콜라보한 버전을 올려봅니다. 재미있게도 톰 요크는 Blue Planet I에서 영감을 받아 <Bloom>을 작곡했는데 그 곡이 다시 두번째 Blue Planet의 OST로 쓰였다니 운명같이 느껴지네요. 하나의 영감이 피워낸 생명이 다시 새로운 영감과 생명으로 피어난 것 같아 <Bloom>이란 제목이 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아름다운 바다의 영상과 함께 라디오헤드의 <Bloom>을 들으며 나를 피워낼 바다를 상상해보세요. 당신으로 가득한 바다를 만나시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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