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에 사는 아이 물구나무 세상보기
아녜스 드 레스트라드 지음, 세바스티앙 슈브레 그림,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둬본 적이 있나요?

외부와 자신을 차단한 채 나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아이에게 '자폐스팩트럼'이라는 장애를 가졌다고 꼬리표를 답니다.

<벽 속에 사는 아이>는 바로 그런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의 이야기예요.

모두가 함께 보고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벽 속에 사는 아이>

한 아이가 벽에 당근을 그리고 있는 표지를 넘기면

벽 너머로 붉은 양귀비 꽃들이 노래하고 있는 어여쁜 면지가 나옵니다.

벽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아이는 벽 속에서 삽니다. 그리고 나오지 않으려고 하지요.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어찌해야 좋을지 모릅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몸에 뭔가 닿는 것도 싫은 아이.

밤낮으로 흔들리는 아이의 몸 때문에 벽이 흔들리지만 아이는 밖으로 나오지 않지요.

벽 속엔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벽에 작은 구멍을, 사랑하는 아이를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구멍을 냅니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 무서워 벽 속 깊이 들어가 버립니다. 당근으로 구멍을 막아 버리지요.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를 위한 자장가를 말이에요.

아이의 벽 안쪽에 양귀비 꽃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아이의 벽 안 쪽에서 자라던 붉은 양귀비 꽃이 마치 아이의 마음 같았습니다.

그 마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처음으로 벽에 작은 구멍을 내고

양귀비 한 송이를 그리고 다음엔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 꽃 한 다발을 내밉니다.

그리고 기다리지요.


자장가를 불러 주러 온 엄마와 아빠에게 아이는 양귀비 꽃다발을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을 내밀어 줍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손을 내밀어 엄마의 미소를 보고 부드러운 엄마의 뺨을 쓰다듬고 느낍니다.

시원한 물소리 같은 아빠의 웃음소리도 듣고 웃는 아빠의 입가를 어루만지고는 다시 벽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를 느낀 아이는 그날 밤 마침내 벽을 깨고 밖으로 나오지요.

아침에 일어난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숨죽여 소리치고 아이의 머리카락 딱 한 올을 만집니다.

행여 아이가 겁먹고 도망치지 않게 말이죠.

아이는 이제 벽 속에 살지 않는답니다. 가끔 잠깐 들어가기는 해도요.

자폐스펙트럼 현상을 보이는 아이의 마음과 증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아이로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벽 속에 사는 아이>

대부분의 발달에 문제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게 자연스러워 이런 아이들과 부모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는 우리들에게 <벽 속에 사는 아이>는 참 많은 울림을 줍니다.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큰 아이가 두 돌이 다 돼도록 호명이 되지 않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폐스팩트럼 판단 지표들을 아이에게 들이밀며 커지는 의심에 눌려 괴로워하다

마침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걱정과 달리 아이는 언어발달이 늦는 것뿐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오가며 수많은 이유로 병원에 오는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치료의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고 힘들지만 부모님들의 얼굴은 절대 어둡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치료될 거라는 희망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 오시더군요.

아이가 벽 속에 사는 것도 괴롭고 힘든 엄마에게 '냉장고 엄마: 엄마의 애착이나 양육 문제로 아이에게 장애가 발생했다는 오해로 생긴 명칭'라며 엄마 탓을 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문제만 생기면 본인 탓을 하며 엄마 아빠가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나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유전적 질환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 좋겠습니다.

저는 엄마라서 <벽 속에 사는 아이>를 보며 자꾸 제 아이를 떠올립니다.

지금도 내키지 않으면 대답을 잘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서 노는 게 더 익숙한 아이라

잔잔했던 마음에 걱정이 태풍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간혹 아이가 건네는 붉은 양귀비 꽃 한 송이에 울고 웃는 나란 엄마.

그저 자신의 속도대로 서서히 자라는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며 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봅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붉은 양귀비 꽃을 꺼내어 더 많은 부모님들이 웃음짓게 되기를 바라며 <벽 속에 사는 아이>가 우리에게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참 소중한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때때로 벽 속으로 들어가곤 하는 우리에게도 밖에서 노래하며 기다리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라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