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에 충분했지만, '생을 헐어 쓴 글'이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더 이 책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평론가의 눈으로 본 평론에 가까운 글이기에 더없이 적확한 표현임에 틀림없을 거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제목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책은 지금의 위화를 있게 한, 위화를 형성한 문학과 음악들에 대한 것으로 그의 독서사이자 음악사이다. 서문에서 그는 독서가 원뜻에 한 개인의 경험과 느낌이 겹겹으로 더해지는 다채로운 시간 즉 음악으로 치면 화성이라면서 이 책이 작품과 '위화'라는 사람이 동시에 함께 연주해 낸 화성이라 말한다. 또 <산해경>에 나오는 눈 하나에 날개 하나인 만만 또는 비익조를 텍스트와 독서행위에 빗대어 둘이 의기투합해야 날 수 있다는 흥미롭고 인상적인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그의 비행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첫 시작은 '견해'에 대한 이야기. 15년 동안 글을 써오며 바뀐 자신과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견해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각각의 견해가 그들만의 자격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15년 동안 글을 써오며 바뀐 자신과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의 문장을 가져오며 첫 도약을 힘차게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가 만난 작가들과 작품들의 서술에 대해 입을 연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통해 정확성과 힘을 보여주는 서술을, 후안 룰포가 보여준 <빼드로 빠라모>의 활짝 열린 경계 없는 서술이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와 카프카의 작품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가와바타와 절단으로 거리를 넓히는 카프카의 다루면서 자기 내면에 충실한 한계 없는 서술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라 '서술'을 바라보며 그것을 분석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서술'에 초점을 둔 독서가 위화의 독서란 생각과 그것이 또한 그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역시나 작품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위화. 위화가 난제처럼 보이는 심리묘사에 대한 답을 발견한 작가들을 이야기하며 작가는 서술의 힘에 선택된다는 위화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헤밍웨이의 <흰 코끼리 같은 언덕>과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일관되고 완벽한 스타일의 심리묘사를 서술하고, 윌리엄 포크너의 <와시>는 토막으로 출중한 재능과 뛰어난 기교를 드러내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는 심리묘사가 아닌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위화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위화를 선택한 서술의 힘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는데 우선 위화가 자주 언급하는 작가 보르헤스. 위화가 말하는 내적으로 풍부하고 경계가 무한한 보르헤스의 현실과 신비를 오가는 서술에 대해 읽다 보면 보르헤스란 작가의 작품에서 두 명의 보르헤스와 만나 미로를 헤맬 것 같은 기대감에 휩싸인다.
더불어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작가 네 사람.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어머니의 이미지와 더불어 고전적 이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국 작가 모옌의 <환락> 그리고 작품보다 작가가 우선인 문학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브루노 슐츠의 작품들과 일본의 히구치 이치요의 <키 재기>는 낯선 그들의 이름만큼 궁금함도 컸다.
이렇게 위화에게 계승된 문학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독자로 그리고 작가로 위화가 작가의 얼굴에서 자신의 형상을 찾고 작가의 가슴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은 것처럼, 식물에게 쏟아지는 햇살 같은 문학 속의 영향은 위화에게로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로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