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에 대한 평은 이 정도로 하고 속내를 들여다 보도록 하자.
겉모습에 속지 말라는 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어쩜 이리 잘 어울릴까?
겉모습은 시작에 불과하고 작은 책이 눈물을 쏙 빼놓을 것이다. 매워서가 아니라 감동적이라서 ^^
남자 아이를 입양하려 했던 고지식한 마릴라와 무뚝뚝하고 말수는 없지만 마음은 따뜻한 매튜 남매가 사는 초록지붕에 상상력 넘치고 감수성으로 똘똘뭉친 빨강 머리 앤이 찾아 오고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처음엔 상상력 천재인 앤의 엉뚱함에 혀를 내두르던 주변 사람들도 차츰 앤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든다.
에이번리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앤만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가며 영혼의 친구 다이아나와 우정을 쌓아가는 앤의 사랑스러운 성장기를 읽다 보면 앤을 응원하는 동시에 앤에게 격려받고 응원받는 기분이 든다.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앤의 다양한 매력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가로서의 능력과 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앤이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들이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참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동시에 그 상상이 이 아이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상상의 또 다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공부머리보다 상상력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데 그것이 새로운 자본의 원천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관점을 좀 씁쓸하게 바라보던 차라 그런지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세 사람, 보통 어린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선호하는 데 거의 다 큰 아이를 입양한 것, 남자아이를 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음을 슬퍼하는 앤의 모습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기고 있는 요즘의 모습과 어떤 접점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이건 여자아이이건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몽상가인 앤과 현실적인 어른의 표본인 마릴라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점차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가고 있는 모습에서 다양한 각자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과정의 따뜻한 서사가 마음에 번져왔다.

모든 책들이 그러하지만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들을 남기는데, 이번에 앤을 만나면서 앤의 성장보다는 앤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릴라와 매트가 부모로 성장하는 모습과 앤과 함께 가족이 되어가는 그 모습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