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풍선 나린글 그림동화
제시 올리베로스 지음, 다나 울프카테 그림, 나린글 편집부 옮김 / 나린글(도서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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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풍선들.

풍선 하나에 기억 하나.

그렇게 다양한 색깔의 풍선 속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기억의 풍선>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어여쁜 풍선을 가득 들고 우리를 맞아줍니다.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나는 추억으로 가득 찬 풍선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나는 동생보다는 많지만 엄마와 아빠는 나보다 더 많은 풍선을 갖고 있답니다.

그리고 내 할아버지는 더 많고 더 멋진 추억 이야기가 들어있는 풍선을 갖고 계시죠.


내가 할아버지에게 풍선 속 이야기들을 해달라고 조르면,

할아버지는 노란색과 파란색 풍선 속 재미있는 어린시절 추억이나

보라색 풍선 속 할머니를 만나 결혼하던 날의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를 들려주신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있는 같은 색깔의 풍선들은

바로 할아버지와 나의 추억이 들어있어 무척 소중하지요.


그런데 요즘 할아버지의 풍선에 문제가 생겼어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풍선을 놓치는 일이 생겼거든요.

할아버지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셔서 내가 열심히 쫓아가보지만

풍선은 매번 손끝을 빠져나가 버립니다.

엄마에게 말씀드리자 엄마는 슬픈 얼굴로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할아버지의 풍선들은 점점 더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나와 할아버지의 소중한 은색 풍선마저 놓쳐버립니다.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길가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지요.


"왜 그 풍선을 날아가게 놔뒀어요? 그건 할아버지와 저의 풍선이잖아요!"

할아버지는 내 등을 토닥여 주셨지만 내가 할아버지의 손자인 것도 잊어버리셨어요.

그렇게 할아버지의 풍선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이제 할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요?

사실 할아버지가 손자인 나와의 풍선을 놓치고 그것을 타박할 때는

정말이지 아이의 성이 난 목소리가, 안타까운 목소리가 너무나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기억하지 못할 때는 그저 가슴이 먹먹해져버렸고요.

사실 저 역시 가까운 두 분이 이 책의 할아버지와 같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계시기에

소년의 마음이, 그 안타까운 마음이 더 가깝게, 더 절실하게 느껴져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모든 기억의 풍선을 놓쳐버린 할아버지와 소년을 어떻게 되었을까요?

멀리 멀리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 할아버지의 풍선들.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소년에게 들려주고 나눠준 기억들은 이제 소년의 풍선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새 풍선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한때 할아버지의 풍선들이었던 추억의 기억들을 말이에요.

우리들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죠.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그리고 나서도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또 다른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게 함께 기억을, 존재를 나누고 이어가고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 우리는 연약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의 풍선>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선이 숨을 불어 넣어야 부풀어 오르는 것이란 점에서, 보이지 않는 숨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장치란 생각이 들었어요. 더 많은 풍선을 건네받고, 더 많은 풍선을 건네주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풍선을 건네받고, 건네주었나요?

우리들의 손에 더 많은 풍선들이 가득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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