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위엄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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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으로 내마음을 사로잡은 켄 리우의 첫 장편 SF!

이미 <종이 동물원>에서 그의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신화와 과학을

가볍지 않은 세련된 문체로 풀어내는 솜씨에 매료되었던지라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리고 겁도 없이 그의 장편 <민들레 왕조 연대기 I - 제왕의 위엄>을 펼쳤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켄 리우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종이 동물원>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긴 호흡으로 이어지고 펼쳐지는 켄 리우의 세계를 마음껏 탐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켄 리우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새롭고 신선한 켄 리우의 이야기에 무한대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책에 밑줄 하나 안 긋는 책 애지중지파인 내가 과감히 부록인 다라 제도의 지도를 잘랐다.

그리고 옆에 펼쳐 놓고 책의 내용을 따라 가며 지도에서 장소를 확인해 가며

다라 제도의 일곱 나라 자나, 하안, 파사, 리마, 아무, 간, 코크루 간의,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그 나라들의 일곱 수호신들 간의

동맹과 배신 그리고 전쟁과 평화를 오고 가는 이야기를 따라갔다.

중국 진나라 말기의 초나라와 한나라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제왕의 위엄>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는 천하통일을 이루려고 했고 실제 통일을 이뤘던 진시황제의 모습이

다라를 통일한 자나 제국의 마피데레 왕의 그림자에서 보여진다.

분서갱유를 연상케 하는 지식인과 사상탄압 사건과 불로불사하려는 노력까지 닮은 꼴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시황제만의 모습이 아닌 권력과 탐욕에 물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기도 하다.

무시를 받던 자나의 레온, 훗날 육국을 모두 통일하는 제왕 마피데레가 되지만 그의 장기집권 아래

고통받던 속국들은 하나 둘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한다.

평범한 집안에서 공부보다 놀기와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 탓에 늦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쿠니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선조와 부친의 복수만을 마음에 품고 자란 진두 가문의 마지막 후예 마타.

이들에게서 각각 유방과 항우의 모습이 슬쩍 슬쩍 비치는데 이들은 코크루의 수피 왕을 도와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백성들의 소박한 꿈을 되찾고, 복수와 명예를 되찾고자 노력한다.

처음 후노 크리마와 조파 시긴에 의해 시작된 반란은 성공하는 듯 하지만 권력과 탐욕의 노예가 된

크리마로 인해 변질되고 뒤늦게 자나의 늙은 수장 나멘과 세무관이었던 마라나의 활약으로

자나 제국이 다시 승기를 잡는가 싶은 순간, 쿠니와 마타는 다시 일어선다.

과연 이들은 그들의 꿈을, 백성들의 꿈을, 민들레 왕조를 이룩할 수 있을까...

중국 역사소설인 '초한지'가 작은 씨앗이 되어 <제왕의 위엄>이라는 엄청난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절대 이 작품이 '초한지'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이것은 엄연히 독자적인 켄 리우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읽어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제왕의 위엄>을 보고 있자니 내친 김에 가물가물한 '초한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한다.

어쨌든 '초한지'와 <제왕의 위엄>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 정도로 언급하고

다시 <제왕의 위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민들레 왕조라는 그 이름부터 마음을 붙잡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라나는 민들레, 그 홀씨가 자유롭게 날아가 여기저기 앉는 모습은 또 어떤가,

그리고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이라고 한다.

그런 민들레를 보며 켄 리우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와 꿈을 떠올렸고, 그것을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

평범한 그러나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인 민들레 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 꽃말처럼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지만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도 그리 쉽지 많은 않다.

쿠니의 비유를 빌리자면 "흙에 뿌리를 박고 살면서도 하늘을 꿈꾸는 꽃이라는 거야. 꽃씨가 바람에 올라타면 민들레는 사람이 공들여 가꾼 장미나 울금향이나 만수국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가서 훨씬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어.(354쪽)"

신화와 역사를 통해 거듭 전해주는 그 교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켄 리우의 소설은 그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복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재미와 감동을 더해서 말이다.

'세상에는 진짜라고 믿는 사람의 수가 충분히 많아지면 진짜가 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234쪽)',

'진실은 남에게서 들은 세상이 아니라 실제로 뛰어든 세상에 존재했다.(313쪽)'

작품 속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세상에서 유효한 이 문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고 또 해석될 수 있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유럽의 신화와 동양의 철학과 역사가 만난 SF의 모범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이런 SF는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가 만들어낸 '실크펑크'라는 단어가

정말로 그의 작품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겠구나 싶다.

세상을 신들이 쓴 책이라는 표현이 이 책에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사람이 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옛 이야기와 신화 그리고 역사를 가지고 가장 최첨단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켄 리우.

정말이지 이번에는 기억하라 내가 당부하지 않아도

모두가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작품 <제왕의 위엄>

나는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켄 리우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들을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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