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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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의 작가로, 제2의 마크 트웨인으로, 반전(反戰) 작가로

알고 있는 커트 보니것.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비참한 포로 생활을 거친 그이기에

그가 쓴 소설이 가진 무게감이 나를 짓누를 것 같아

여지껏 그의 책을 읽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의 초기 단편 모음집인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건네는 환영 인사에 서둘러 커트 보니것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그의 단편 25개가 실려 있는 모음집으로

책을 읽는 과정이 마치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구현해 놓은 25개의 방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작가가 사는 케이프코드를 소재로 쓴 '내가 사는 곳'

커트 보니것 표 여행 책자를 보는 기분이 드는 작품으로,

케이프코드에 가게 된다면 이 작품을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여행 책자의 소개를 기대하고 보면 안 된다는 것은 명심하시기를.

케이프코드는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배경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 작품이 제일 처음에 위치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다음으로 그의 SF 장르의 단편들을 모아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2081년 모두가 평등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해리슨 버저론'

평등이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이루어져야 할 이상이라 생각하며

평등을 위해 핸디캡을 부여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평등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인구과잉으로 인해 윤리적 자살을 장려하고, 윤리적 산아 제한을

강제적으로 실시하는 미래 사회가 등장하는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의될 윤리적 죽음의 문제는

어쩌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인 빌리는 구세주의 또 다른 형태인지도.

'입을 준비가 되지 않은'에는 양서류처럼 탈피하는 '양서인(兩棲人)'이라는 인류가 등장한다.

양서인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전쟁 중인 양서인들의 뼈아픈 일침에 들어 있는 메세지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에 등장하는

의학의 발달로 늙지 않는 세대 간의 갈등과 고갈된 자원으로 물자가 부족해진

사태가 불러일으키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결코 반갑지가 않다.

마지막 반전과 블랙 유머에 쓴 웃음을 지으며

죽음을 물리친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진정한 행복과 행복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유피오의 문제'는

보크먼 박사가 우주 공간에서 들려오는 전파 신호로 사람들의 행복감을 고조시키는 유포리아를 발견하고

이내 그것의 문제점이 발견되지만 이를 상용화해 돈을 벌려는 이와 이를 막으려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커트 보니것의 SF 작품들은 우리에게 미래는 이토록 불안한 현재의 우리의 상태가 투영되어 보여지는 거울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 우스꽝스러움에 쓴웃음을 짓게 한다.

어두운 미래 사회의 단면들을 보았으니 조금 분위기를 바꿔

커트 보니것 표 사랑에 관한 단편들을 살펴 보자.

아마추어 극단의 오디션을 보는 과정에 만나 결혼에 이르고

연극 같은 결혼 생활을 하는 커플의 이야기인 '이번에 나는 누구죠?'.

작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기념하며 결혼 전 신부가 될 사람과 보냈던

어떤 오후를 그린 '영원으로의 긴 산책'.

싸움으로 시작된 사랑의 시작을 그린 '유혹하는 아가씨'.

제목 그대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소중한 아내와 아들에게로 돌아가'는

재치있는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본인도 손발이 오그라드는(이리 표현은 안 했지만 분명히 그러셨으리라 ㅋ)

이런 의외(?)의 낭만적인 면이 드러나는 글을 쓰시는 건 귀엽다는 표현 밖에는 뭐...ㅋㅋ

이번에는 반전 작가로의 면모가 보이는 단편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모두 왕의 말들'에서는 전쟁 포로로 잡힌 켈리 대령과 그의 가족 그리고 부대원들이

자신들을 말로 세워 생명을 담보로 체스 게임을 하게 된다.

인간을 말로 취급하는 게임 같은 전쟁을 하는 모든 상황과 그 부조리함을

손에 땀을 쥐게 하며 보게 만든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들의 이야기인 '난민',

참혹한 현실 앞에 그야말로 순수한 어린 천사인 '조'이면서 '카를'인 흑인 고아의 부모 찾기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파괴할 수 있는 '반하우스 효과'

다른 말로 '염력'을 가진 반하우스 교수의 이야기인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그를 인간병기로 사용하려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야욕에 희생당하지 않으려 잠적한 채

세상의 무기들을 파괴해 나간다.

무모한 군국주의자들은 그의 죽음을 기다리지만 그는 자연사할 것이며

이 보고서를 쓰는 유일한 후계자인 나는 장수할 것이라는 마지막 메세지가 통쾌하다.

미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인 우주 개발을 하던 냉전 시대가 배경인 '유인 미사일'은

과학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통제되어 온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라는 국적은 다르지만 똑같이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의 편지가 마음을 울린다.

'아담'은 나치에게 가족 모두를 잃고 살아남은 네히트만과 그의 아내가 첫아이를 낳아

그 기쁨을 나누려 하지만 사람들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경외를 잃은 우리의 무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커트 보니것 스스로가 전쟁의 한가운데를 지나왔기 때문일까?

그의 전쟁과 생명에 대한 생각이 녹아 있는 이 작품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자, 이제 남아 있는 다른 단편들을 살펴보며 정리를 해볼까 한다.

투자 자문회사의 중개인인 내가 가난하게 살아가는 포스터의 상속 증권을 관리해 주면서

그가 부유한 삶을 마다하는 진짜 속내를, 그만의 비밀을 알게된다는 내용의 '포스터의 포트폴리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택한 그의 짠내 나는 소신과 정말 마지막 반전이 허를 찌른다.

위의 단편과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한결 위풍당당한 저택'에서는

실내 인테리어에 모든 꿈을 걸고 사는 부부가 등장하는데 풍자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던 작품.

사람보다 더 똑똑한(?) 개 스파키가 등장해 견생(犬生)보다 못한 인생(人生)들에 도움을 주고

장렬히 죽음을 맞는 '톰 에디슨의 털복숭이 개'.

사전과 단어를 사용해 고급스럽고 지적인 언어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새 사전'.

혼자 남겨진 아이가 옆집에서 나는 남녀의 싸움 소리를 듣고 그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금기시된 어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시끄럽고 과격하게 그려낸 '옆집'.

캐네디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작가의 정치적인 관심사가 드러나 있는 '하이애니스포트 이야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다 미래의 안정을 위해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공장에 취직한 데이비드.

그는 자신처럼 그 안에서 길을 잃고 곧 죽임을 당할 사슴과 함께 탈출한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를 망치고 있는 것들에서 탈출하기를 바라게 되는 '공장의 사슴'.

'거짓말'은 집안 대대로 입학해 온 화이트힐 사립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아이가

불합격통지서를 받고 이를 찢어버리고 숨기면서 일은 점점 더 커진다.

천천히 드러나는 인간적 속물 근성이 잘 드러난 작품.

문제아 중의 문제아인 '짐'의 마음을 돌려

자신의 밴드에서 함께 연주하게 만드는 헬름홀츠 선생의 감동 드라마 '아무도 다룰 수 없던 아이'.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에피칵',

나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에피칵'의 도움을 받지만 이로 인해 에피칵은 사랑을 알게 되고,

기계인 자신의 숙명에 괴로워하는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에피칵'의 최후의 선택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의 작품들 면면에는 차가운 절망과 어두운 현실을 녹이고 밝혀줄 인간적인 온기가 스며있어

읽고 있노라면 마음으로 그 밝고 따스함이 전달된다.

그래서인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작품들이었다.

커트 보니것의 기막힌 상상력이 구조화된 소설이라는 방에서

그만의 블랙 유머에 친숙해지며

때론 서늘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독특한 작가의 시선에 감탄하는

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의 단편들이 준 첫인상은

각 작품이 가진 개성이 제각각 다르고 뚜렷해

커트 보니것이 작가로서 가진 역량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단편 하나에 응축해 놓은 주제의식과 고민의 깊이는

얼마나 깊고 넓은지 씁쓸한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그 묵직함은 장편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없이 짓누르지 않는 것은 그의 명랑한 기운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들이 주는 무게감 있는 울림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인 커트 보니것의 장편들을 읽을 준비는 충분히 끝낸 셈.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시작된 커트 보니것과의 인연!

사실 처음 커트 보니것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커트'라는 이름 때문에

'너바나'의 요절한 음악 천재 커트 코베인이 먼저 떠올랐지만,

이제는 소설 천재 커트 보니것으로 내 마음 속에 선명하게 자리잡으셨다는 거.

역시 우리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네요.

작가님, 몽키하우스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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