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공화국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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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필인 나에게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내 글씨를 보인다는 것이 마치 알몸을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인지라
손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는 시대에 산다는 게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까지 하지만,
정작 쓸 일이 생겼을 때는 정말이지 난처하고 부끄럽고 참 피하고 싶다.
그런 나인지라 '츠바키 문구점'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포포'가 얼마나 부러운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글씨는 깨끗하다느니 더럽다느니 하는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마음을 담아서 쓰는가가 중요하다.
혈관에 피가 흐르듯이 필적에 그 사람의 온기나 마음이 담기면 그건 분명히 상대에게 전해진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 35쪽"

게다가 글씨란 표면적인 것보다 얼마나 마음을 담아서 쓰는가가 중요하다며
쑥스럽고 머뭇거리는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고 구원해 준 고마운 그녀!
그런 그녀가 엄마가 되어 '반짝반짝 공화국'으로 돌아왔다.

<반짝반짝 공화국>의 전편인 <츠바키 문구점>은 
포포가 돌아가신 선대(할머니)의 대필하는 일을 물려받고,
그 일을 해나가며 할머니와의 오해도 풀며 어엿한 대필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짝반짝 공화국'에서 포포는 사랑의 큐피트 역할을 한 큐피(하루나)의 엄마로,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미츠로 씨의 아내로 그리고 포포만의 츠바키 문구점의 대필가로 성장한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가 동생 같고, 딸 같았다면
'반짝반짝 공화국'의 포포는 엄마가 되어서인지 훨씬 더 친구 같은 포포로 다가온다.
결혼 생활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인생의 포상 같은 하루를 보내며 
그 하루로 또 다른 힘든 날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포포.
큐피에게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고, 
아이의 건강을 제일로 생각하게 된 포포.
큐피에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살아갈 수 없을 거라며
 만개한 벚꽃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는 포포.
육아는 됐어, 하고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미츠로 씨의 말대로 
에이, 됐어,하고 넘기는 포포.
소중한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을 지키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포포.
그런 포포를 만나 참 고맙고 다행이다.

<반짝반짝 공화국>에서 더욱 '만남'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에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포포가 꾸린 가족도 그러하지만
포포에게 대필을 부탁하러 온 모든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만난 인연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좋았다고." 대필을 부탁하러 온
눈이 보이지 않지만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다카히코.
(포포는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는데 난 울어버렸다.
문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이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여서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북받쳐 오른다.)
대필 대신 다카히코가 직접 쓰도록 도와주는 포포의 그 마음씀에
역시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엄마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세지는 다카히코 것만이 다가 아니다.
포포짱의 사랑과 애교덩어리 큐피의 것!
"포포짱, 사랑해요!"라며 어머니의 날에 포포에게 보낸 큐피의 손편지.
부러운 마음은 이내 나도 곧 받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으로 변했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편지를 시작으로
남편에게 사죄의 편지를 받고 싶은 요코 씨,
이혼 편지를 부탁하는 J클레오파트라 씨,
이혼 편지에 대한 답장을 부탁하는 리처드(반) 기어 씨,
고백 편지를 부탁하는 엄청나게 섬세한 마음의 집게 씨,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미츠로 씨에게 보내는 포포의 편지,
생후 8일째 아침 세상을 떠난 마오의 상중 엽서를 부탁하러 온 마오의 부모,
아픈 친구에게 돈 문제를 정리하고픈 편지를 부탁하는 마담 칼피스,
하늘에 있는 미츠로 씨의 전아내이자 큐피의 친엄마인 미유키 씨에게 보내는 포포의 편지까지
하나 하나의 사연과 편지가 건네는 이야기에 마음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해진다.

한 가지 더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음식에 대한 작가의 따뜻하고 특별한 관심이다.
반짝반짝 공화국의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식탁의 시간.
쑥 경단의 봄, 이탈리안 젤라토의 여름, 무카고밥의 가을, 머위 된장의 겨울.
오감을 감동시키는 소설이라니
오가와 이토의 소설이 갖는 특징이면서 장점이 아닐까?
배를 채워주듯이 가슴을 채워주는 소설.
<반짝반짝 공화국> 역시 그렇다.

반짝반짝 빛나는 글씨가 담긴 편지를 받은 기분이다.
밤하늘에 가득 펼쳐진 별들처럼 뿌려진 글씨들이 반짝거리는 행복을 건넨다.
포포가 써주는 편지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그 반짝거림이 얼마나 따뜻한지
꼬옥 품에 안고 놓치고 싶지가 않다.
문득 나는 어떤 이야기로 포포를 찾아가게 될까 생각해본다.
더불어 당신이 어떤 이야기로 포포를 찾아갈지도 궁금해진다.
포포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마음의 어둠을 밝혀 줄 우리의 반짝반짝.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한낮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속에는 선대도, 그리고 미유키 씨도 있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빛에 싸여 있다. 
그러니까 괜찮다.
내게는 반짝반짝이 있다."
- 292쪽 -


여담 하나!
두번째 책이 푸른 색인 것은 
포포, 미츠로 그리고 큐티가 한 가족이 되어 출항하는 바다의 색인 것만 같다. 
혹은 세 사람이 전하는 결혼안내장인 비행기가 날아갈 하늘인지도.
띠지인 희망과 행복의 색 노랑은 포포가 고른 결혼안내장의 바로 그 노란색이 아닐까?
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세심한 마음이 빠짐없이 곳곳에서 느껴져서 
더욱 소중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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