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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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짐작하려 애써도 닿을 수 없는 고통이 있다. 가족을 잃는 일이다. 그런데 상실의 이유가 자살이라면 남은 가족들은 죄책감과 무력감에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현요아 작가는 동생을 그렇게 잃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동생을 애도하고 부재를 슬퍼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둠 속에 몸을 감추던 그녀는 그 고통을 기록하며 세상으로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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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2

일차원 집단이라 불리는 가족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짐이 되고 내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발을 잡는 무게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단언한건대 나는 후자였다.


p 43

졸업할 무렵이 되자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엄마는 차를 폐차시켜야 할 만큼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했다. 막내는 죽음을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아빠는 자신이 저지른 가정 폭력을 시인하다 부인하기를 반복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대인기피증 진단을 받았다.


p 100

내 아픔만 유독 색다르게 느껴질 때, 속으로 읖조린다. 찾아온 불행에 억지로 서사를 더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않을 것.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운이 없는 사람이라 확신하지 않고 마주친 상황 하나에만 잠시 좌절할 것. 고통뿐인 하루를 지나가는 과정 속 중간중간 마주치는 행복을 인지할 것. 어제는 불행을 느꼈지만 오늘은 행복에 도취하는 모든 모습이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 것. 타인이 겪는 아픔의 깊이가 내 것보다 얕으리라는 믿음을 버릴 것. 불행과 아픔, 슬픔이나 괴로움의 무게를 재지 않고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미룰 수 없이 찾아온 밤에 아파하다가도 다음 날 결국 삶 쪽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존재를 존경할 것. 


p 217

불안을 많이 느끼게 태어났다고 해서 불안이 올 때마다 나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범불안 장애라는 간략한 진단이 나를 대표하는 특징은 아니니까. 나는 불안에 잠식된 사람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친구가 조금 더 많아서 얘기를 오래 들어 줘야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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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베란다 앞에 서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지속됐고 끔찍한 기억이 계속 올라왔고 호흡곤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허리를 끌어안고 그러지 말라며 매달리는 딸을 끌어안고 같이 엉엉 울었다. 그 후 딸은 불면증이 생겼다. 새벽마다 안방 문을 열고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엄마가 또 뛰어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온전히 괜찮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분명한 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도 이제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혼자 처리하며 그 우울감이 몸을 다 적시지 않도록 발목에서 찰랑거릴 때 빠져나온다. 자살에 실패한 후 내가 깨달은 건 나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의 예상과는 달리 생명은 소중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나도 아프고 당신도 아프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젠가는 긴 여행을 떠나니 지금 이 순간 고통에 집어삼켜지지 말고 나를 방문하는 그 불행을 손님처럼 맞이하고 보내자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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