썅년의 미학 썅년의 미학
민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썅년의 미학]. 제목부터 살벌한 이 책은 여자로 태어나 이런저런 기준과 틀로 목을 조르는 세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시선보다 우선시하는 여자'를 일컫는 말로 '썅년'이라는 제목을 저자는 붙였다.

올 봄,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미투 열풍'은 성범죄 피해 여성에게 수치심이라는 형틀을 걸고 입 다물고 살기를 강요했던 남성들에게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은 가해자인 남성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줬다.

서평단에 신청했지만 '나는 과연 썅년이었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내가 썅년답게 행동한 건 붐비는 버스에서 하반신을 밀착시키고 내 엉덩이를 주무르던 아저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친 기억이다. 당시엔 여중생이 많은 승객들 사이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건 대단한 용기와 시선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듣던 시대에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돌아간다'는 사고를 심어준 여대를 다녔고 학창시절에는 부당한 대접과 억울한 상황에 많이 직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녀공학에 진학한 딸은 여학생들이 수적으로 적은 건축학과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불합리한 상황에 맞닥뜨리곤 한다.

일단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여자가 힘들고 빡쎈 과를 들어갔다고 걱정하는 덕담을 빙자한 할아버지의 편견 가득한 말로 기분을 잡쳤고 동기들과 똑같이 날밤을 새면서 체력의 한계에 부딪치기도 한다. 첫 학기 글쓰기 수업에서 '성매매 합법화에 대한 찬반론'을 주제로 선정한 교수 때문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과 특성 상 조를 나눠도 4~5명의 남학생에 1명의 여학생이 배정되서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조에 청일점인 남학생이 있는 조에 '병역 제도에 대한 찬반론'을 묻는 것만큼이나 불공평하고 어이 없는 주제 선정이었는데 그런 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딸은 낮은 학점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과 특성 상 작업실에서 밤을 새는 일이 많아 딸은 늦은 밤이나 새벽에 택시로 귀가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요즘은 카톡으로 차량 번호, 기사님 전번과 성함이 뜨는 콜 서비스가 있어 걱정이 덜한 편이나 몇시에 들어오든 아들 키우는 것처럼 들어오든 말든 발 뻗고 잘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딸을 키우고 싶다.

나는 딸이 여자는 'oo해야 한다'는 세상의 기준과 시선을 부수는 그런 어마무시한 썅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사는게 고달프고 버겁고 힘들어도 옳지 않은 걸 지적하고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하는 여자로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딸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대접받고 동등하게 서로 존중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딸이 사랑을 하고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 자녀 양육을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국가에서 감당하고 집안일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같이 하는게 당연한 그런 남자와 살았으면 한다. 결혼과 출산이 자신의 경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그런 세상에서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아내와 엄마가 되라고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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