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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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로 요약되는 공리주의는 우리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다수결제도 또한 최대 다수의 의견을 따라 최대 의견이 선정 되어 모멘텀을 끌어가는 것이 또한 정치다. 최대 다수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양적 공리주의는 제러미 벤담에 의해 주창 되었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은 행복에 대해 큰 가치를 두고 지적인 가치를 인정한 밀의 말이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우리 삶 속에 깊숙히 침투하여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공리주의가 마냥 유익한 것일까? 공리주의의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없을까? 공리주의를 불변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최대 다수가 아닌 부분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그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의견과 개인의 만족, 행복이 배제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권력을 잡은 다수의 정치가에 의해 전쟁이 촉발되고, 그 속에서 개인의 개성과 존중은 묵살되어 버리고 오직 커다란 집단 즉,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작은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는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세계대전이 이러한 경향을 띤다.

존 스튜어트 밀의 질적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인간의 목표는 행복이라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인간은 행복과 만족을 느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는 바람직해보인다. 여기에다 더해 소수의 행복 또한 지켜주는, 즉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면, 타인의 행복도 중요하다라는 존중의 바탕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의 행복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나의 행복의 최대치가 아닌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극과 극으로 세상을 나누어놓고 최대행복만 추구하다가는 자칫 본질을 잃을 위험이 있다. 양극화로 심해지고 분열되는 현대사회를 보면 공리주의가 우리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져 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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