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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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빔을 루크 혼자 트럭에 실었어.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하고 있는데 여기 와서 보니 너는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구나!" 일을 해야 할 시간에 책을 보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 나라면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겠지만, 타일러 오빠는 차분했다. "아버지 점심 후에는 더 열심히 일을 할게요. 하지만 아침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해요." 대부분의 경우 타일러 오빠가 항복을 했다. 그럴 때면 오빠는 연필을 놓고, 축 처진 어깨로 작업용 부츠와 용접 장갑을 끼곤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 내가 놀라 마지않는 그런 날 아침에는 아버지가 씩씩거리며 뒷문으로 나가곤 했다. 혼자서.

다시 지하실에 가서 불을 켜주지 않읍면 오빠는 책을 코앞에 대고 어둠 속에서 읽곤 했다. 오빠는 그토록 절실하게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토록 절실하게 백과사전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 저자인 타라를 배움의 길로 이끌어 준 타일러는 교육이라곤 거의 받지 못한 집에서 험한 고철 처리장 일을 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의욕을 놓지 않았다. 그는 책에서 길과 희망을 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공부가 진절머리 나도록 싫고 놀고 싶은 사람과 그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시간을 쪼개고, 책을 보고 싶어서 깜깜한 어둠속에서 눈앞에 대고서라도 읽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그런 사람이.

☆ 그러나 그때 내가 이해한 한 가지는 내가 나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것, 내 안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지자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던 그 무언가는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은 적든 상관없이 스스로 타고난 본연의 가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길 거부한 것은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은 특권이었다. 그때까지의 내 삶은 늘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서술되어져 왔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강하고, 단호하고, 절대적이었다. 내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만큼 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분노뿐이었다. 아버지의 질환으로 피해를 본 것은 결국 우리들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루크 오빠, 숀 오빠. 우리는 멍들고, 베이고 뇌진탕을 겪고 다리에 불이 붙고, 머리가 깨지고 터져야만 했다. 항상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살았고, 위와 같은 상황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뇌는 늘 코르티솔이 넘쳐났다. 아버지가 항상 안전보다 믿음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늘 자기가 옳다고 믿었고, 첫 번째 차 사고, 두 번째 차 사고, 내 추락, 화재, 팔레트 사고가 난 후에도 계속 자기가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 대가를 치른 것은 늘 우리였다.

☆ 나는 친절을 제외한 어떤 형태의 잔인함도 견뎌 낼 수 있었다. 칭찬은 내게 독과도 같았다. 그것을 마시면 나는 목이 메었다. 나는 교수가 나에게 고함 치기를 원했다. 그의 비난을 너무도 깊이 원한 나머지 궁핍감으로 어지러웠다. 나의 추한 모습을 누군가 말로 표현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교수의 목소리에서 그 표현을 찾지 못하면 내가 스스로 찾아야 했다.

☆ "네가 미국에 있으면." 아버지는 속삭였었다. "우리가 널 데리러 갈 수 있어. 어디에 있든지. 들에 묻힌 지하 탱크에 연료가 4000리터나 있으니 종말이 오면 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어, 안전한 곳으로 말이야. 하지만 네가 바다를 건너가 버리면..."

★ 이 대목에서 알 수있듯이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받아들였던 종말론이라든지, 모르몬 교서에 대한 맹신, 피해망상증에 대한 생각과 상상들이 그를 의도치 않게 자기편향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생각으론 세상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며, 그가 바라보는대로 세상이 보였을 것이다.

"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가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이 책을 읽고나서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빌 게이츠가 추천한 책이었고,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올라가 있어서 좋은 책이라는 것이 검증되었다고 생각해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전 간략한 내용을 보았을때 이 소녀는 부모의 영향으로17살까지 학교도 가지 않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나와서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고 17살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노력해서 대학에간 이야기를 담고있겠거니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가 겪었던 일들이 고난의 연속이었고, 부모님이라는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까지 그 알에서 깨어나오는 과정이 숨막혔고, 때때로 긴장되기도 했고 통쾌하기도 했다. 그녀의 삶 자체가 드라마였다.

# 더 넓은 세상

<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우리들이 태어나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데 가장 영향을 받기 쉬운 두 집단이 있다. 바로 첫 번째는 부모님, 두 번째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저자는 첫 번째, 부모님의 영향으로 학교를 가지 못했다. 오롯이 부모님의 영향 아래 세상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배워야 했다. 부모의 생각과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린 자식들에겐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사회에 나가서 타인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타라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세상을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공교육을 정부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좁은 세상에 머무른 채 살게 되었다. 이 책의 앞부분에 "타일러 오빠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를 새로운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준 사람이 타일러 오빠임을 알았다. 주어진 대로의 삶을 거부한 그들의 삶은 부모라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혔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배웠던 것들을 의심하고, 새로운 것들에 눈을 떴다. 부모의 영향력이 그들을 집어 삼켜버리기 전에 그들은 스스로 진실을 알고, 다른 세상을 보기를 원했다.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나는 어떤 교육을 받았고, 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줄 수 있는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아는 것들이 전부인가? 아닐 것이다. 좁은 시야 갇히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그것이 타라에게는 교육과 배움의 진정한 의미였다.

# 아무도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나 자신 빼고는 아무도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저자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쉬운 여자'로, '여자는 순종적이여야 한다.'로 규정하는 그녀의 오빠 숀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진리라고 그녀에게 끝없이 이야기하고 사상을 주입하는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그녀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은 단순한 사실일 것이다. 때때로 타인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우리 자신의 존재자체를 그의 시선과 생각에 한정짓고 규정당하는 느낌이 들곤한다. 그녀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같은 사실을 거부했다.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 배움을 통해 새로운 사실에 눈을 떴고, 자신을 규정하려 했던 타인의 속박을 거부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점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이 나 자신을 규정짓게 내버려 두지 말라고.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경험을 하는 순간에 생기는 감정은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된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오직 과거에 대해서만 완성된 감정을 지니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

# 여자에 대한 속박

이 책에서 타라의 아버지와 오빠 숀은 그녀에게 "창녀"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단단히 심었다. 화장을 하고, 딱 맞는 옷을 입은 여자는 쉬운 여자이며 더러운 여자라는 것이다. 남자들의 언어로 여자를 속박시키려했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힘으로 제압하고, 대들지 못하도록 폭력을 썼다. 조신해야 한다며 부모님과 남자친구가 지켜보는 와중에 그녀를 제압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그러고도 그게 잘못인지를 몰랐다. 너무 심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만했을뿐 후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녀의 부모도 그러한 사실을 눈감아버렸다. '여자는 조신해야하며, 남자의 말을 잘 들어야한다. 고자질을 하는 니행동이 잘못된 것이다.' 라며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오빠에게 사실을 폭로해버렸다. 그녀의 어머니도 남편에게 순종적인 그런 구시대적 여성상이었다. 권위적인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들을 감싸는 그런 행동들이 타라를 힘들게 했다. '으레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 여자는 여자의 일이 따로 있다.'와 같은 사실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만연하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제가 끊임 없이 제기된다. 남자로써 여자들의 그러한 부분에 공감하고, 그들의 권리가 더 이상 과거의 구시대적인 여성상과, 권위적인 남자들에게 매몰되지 않도록 인식을 바꾸는데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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