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3
☆ 하지만 날이 저물었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질녘이면 아버지는 늘 울타리를 다시 세워 무너지지 않게 보수했고, 먹을 것이 풀뿌리와 열매밖에 없어도 일단 배를 채워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돌도끼의 상태를 점검하고 막대기를 날카롭게 깎았다. 그런 아버지가 없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난 메머드를 만났거나 실수로 악어를 밟아서 변을 당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아버지가 항상 시켰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주위로 불길한 예감이 스며들었다. 맹수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렸고, 달을 바라보며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듯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가 정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곳으로 가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다 다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정체불명의 외눈박이 짐승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비몽사몽간에 발견한 그 괴물은 마치 이마에 활활 타는 화산을 올리고 거침없이 걸어오는 도마뱀 같았다. ... 놀랍게도 그 괴물은, 손을 높이 치켜든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그것, 나뭇가지 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며 저 먼 밀림까지 기세를 떨치던 그것은 바로 불이었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진화중인 원시인들의 삶이 지금의 인간들과의 삶과 달라도 너무 달랐구나를 새삼 깨달았다.그들에겐 불이 없었다. 또한 온갖 맹수들의 위험과 혹독한 추위와 질병, 환경적 요소들에 의해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인류는 그러한 방식으로 조금씩 진보하여 오늘날의 현생인류에 이른 것이다. 지금에서야 인류는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온갖 자연들을 길들이려 하고 있지만 실상 인류의 원생들은 아주 나약한 개체에 불과했다. 그들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불을 이용하면서부터 발전이 시작된 것이다. 불을 이용하면서 날고기를 먹으며 만성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인류는 불에 익힌 부드러운 고기들을 무리없이 소화시킬 수 있었고 이를 포함한 불의 사용이 각종 맹수로 부터의 안전과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 많은 열량을 비축하여 뇌의 발달이 점차 시작된 사건을 의미한다. 남은 에너지를 문화와 예술, 창의적인 발명을 가능케 했는지도 모른다. 일테면 동굴벽화, 문자, 농업 등등. 인류는 꾸준히 발전을 추구해왔다. 지금도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p.97
☆ "앞을 볼 생각이 없는 사람은 장님이나 다름없는 법이지."
"그럼 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는 거죠, 아버지?"
"전 지금도 충분히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살 만하다고? 좀 있으면 아주 여기가 지상낙원이라고 하겠구나. 그건 진화에 넌덜머리가 난 녀석들이나 하는 말이야. 그렇게 안이하게 살면 머지않아 자기보다 더 진화한 녀석들에게 잡아먹히고 말 거다. 넌 대체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먹겠니? 마치 내가 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구나. 그런 정신머리를 가지고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위해 노력해온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라고 말하다니, 나 원 참!"
★ 끊임없이 발전을 해야한다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현재에 만족하는 오스왈드의 갈등에서 진보하고 발전하려는 한 인간과 안주하고 현재에 만족하고자 하는 인간 상이 그려진다. 원시인들이 우리 현대인 사회 모습에 투영된다.
p. 135
☆ 그렇게 되면 하염없이 나태해질 뿐이다. 오히려 적당히 스트레스가 있어야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삶의 추진력도 얻을 수 있는 거야." - 에드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