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맨 -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로이 루이스 지음, 호조 그림, 이승준 옮김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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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 하지만 날이 저물었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질녘이면 아버지는 늘 울타리를 다시 세워 무너지지 않게 보수했고, 먹을 것이 풀뿌리와 열매밖에 없어도 일단 배를 채워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돌도끼의 상태를 점검하고 막대기를 날카롭게 깎았다. 그런 아버지가 없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난 메머드를 만났거나 실수로 악어를 밟아서 변을 당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아버지가 항상 시켰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주위로 불길한 예감이 스며들었다. 맹수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렸고, 달을 바라보며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듯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가 정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곳으로 가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다 다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정체불명의 외눈박이 짐승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비몽사몽간에 발견한 그 괴물은 마치 이마에 활활 타는 화산을 올리고 거침없이 걸어오는 도마뱀 같았다. ... 놀랍게도 그 괴물은, 손을 높이 치켜든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그것, 나뭇가지 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며 저 먼 밀림까지 기세를 떨치던 그것은 바로 불이었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진화중인 원시인들의 삶이 지금의 인간들과의 삶과 달라도 너무 달랐구나를 새삼 깨달았다.그들에겐 불이 없었다. 또한 온갖 맹수들의 위험과 혹독한 추위와 질병, 환경적 요소들에 의해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인류는 그러한 방식으로 조금씩 진보하여 오늘날의 현생인류에 이른 것이다. 지금에서야 인류는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온갖 자연들을 길들이려 하고 있지만 실상 인류의 원생들은 아주 나약한 개체에 불과했다. 그들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불을 이용하면서부터 발전이 시작된 것이다. 불을 이용하면서 날고기를 먹으며 만성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인류는 불에 익힌 부드러운 고기들을 무리없이 소화시킬 수 있었고 이를 포함한 불의 사용이 각종 맹수로 부터의 안전과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 많은 열량을 비축하여 뇌의 발달이 점차 시작된 사건을 의미한다. 남은 에너지를 문화와 예술, 창의적인 발명을 가능케 했는지도 모른다. 일테면 동굴벽화, 문자, 농업 등등. 인류는 꾸준히 발전을 추구해왔다. 지금도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p.97

☆ "앞을 볼 생각이 없는 사람은 장님이나 다름없는 법이지."

"그럼 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는 거죠, 아버지?"

"전 지금도 충분히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살 만하다고? 좀 있으면 아주 여기가 지상낙원이라고 하겠구나. 그건 진화에 넌덜머리가 난 녀석들이나 하는 말이야. 그렇게 안이하게 살면 머지않아 자기보다 더 진화한 녀석들에게 잡아먹히고 말 거다. 넌 대체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먹겠니? 마치 내가 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구나. 그런 정신머리를 가지고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위해 노력해온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라고 말하다니, 나 원 참!"

★ 끊임없이 발전을 해야한다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현재에 만족하는 오스왈드의 갈등에서 진보하고 발전하려는 한 인간과 안주하고 현재에 만족하고자 하는 인간 상이 그려진다. 원시인들이 우리 현대인 사회 모습에 투영된다.

p. 135

☆ 그렇게 되면 하염없이 나태해질 뿐이다. 오히려 적당히 스트레스가 있어야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삶의 추진력도 얻을 수 있는 거야." - 에드워드

자연이 언제나 육체적으로 힘센 자들의 편만 드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기술적으로 앞서있는 자들의 손을 들어줄 때도 있지. 지금은 그게 바로 우리야.

에드워드

또 한편으로 불의 사용 같은 기술의 진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도 제시된다. 에드워드가 화산에서 건져온 불이 먹이를 찾아 초원을 홀랑 태우고, 에드워드 가족마저 삼킬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는 이 책이 발표될 당시 세계를 위협하던 핵전쟁에 대한 신랄한 경고라고 생각된다. 원시인의 부싯돌에서 발화된 초원을 태우는 불길과 지구별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핵전쟁 버튼이 갖는 함의는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흥미로운 비교가 아닐 수 없다.

[출처] [2019-160] 에볼루션 맨 / 로이 루이스|작성자 레삭매냐

위대한 발명을 돈벌이나 상업화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이바지해야 한다는 발명가 에드워드의 생각은 자본주의 3.0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그런 이상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로이 루이스 작가는 홍적세의 원시인보다도 못한 현대 발명가들의 생각을 저격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불치병에 대한 독점적 발명 권리를 바탕으로 해서 수익을 내는 다국적 의학기업의 횡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논리가 원시인 에드워드의 그것만도 못하다는 점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읽어낼 수가 있었다.

[출처] [2019-160] 에볼루션 맨 / 로이 루이스|작성자 레삭매냐

★ 블로거 레삭매냐님이 불의 사용에서 작가가 글을 쓴 시점인 1960년대의 핵전쟁에 빗대어 생각할 줄 아는 통찰력이 대단해보였다. 또한 원시인들끼리 일어났던 정보를 개방해 전체 사회를 발전시키려 했던 노력에 대해 그 정보를 독점으로 활용해 자신들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하고자 했던 이익집단과 이상주의자와의 대립에서 현대의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통찰도 배울 수 있었다. 작가가 작품을 쓸때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가 자라난 환경을 연관짓는 다면 소설속 이야기의 함의가 더 깊게 와닿을 수 있겠구나를 배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버지 에드워드는 진보한 기술과학자

삼촌 바냐는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자연인

삼촌 이안은 정착하지 않고 모험을 추구하는 방랑자

첫째 아들 오스왈드는 타고난 사냥꾼

둘쨰 어니스트는 생각하는 철학자

셋째 알렉산더는 예술가

넷째 윌버는 아버지와 함께 진보를 추구하는 과학자

막내 윌리엄은 자연을 길들이려는 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소설속에 등장한다. 모두 원시인들이지만 현대사회에 빗대어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특히 두드러지는 갈등은 아버지 에드워드와 삼촌 바냐의 갈등인데 끊임없이 나은 삶을 추구하며 진보하고 발전하려는 에드워드와 현재에 만족하며 본분을 잊지말고 자연속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 바냐의 대립에서 진보와 보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는 차치해두고 기술과 생각의 진보로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진보된 생활을 하게 된 것임음 분명하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도 다 발전과 진화, 진보의 산물이 아니던가? 바냐 삼촌처럼 현재에 안주하고 만족하고 자연속에서 살았더라면 지금의 인간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더 강한 포식자가 나타나 호모 사피엔스를 멸종시켰을 것이다. 하라리의 저작 <사피엔스>에서도 그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인류는 극단적으로 살인자의 후손들이라고, 어쨌든 우리가 발전하고 진보함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여기에 존재해 있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진보와 발전추구는 자칫 그 기술을 감당할 수 없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AI가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럴때는 일견 바냐의 주장도 타당해보인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발전과 대립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드워드'라는 인물의 사상과 의지를 참 높게 평가한다. 그의 발전적인 생각과 그로 인한 행동으로 수 많은 인류가 혜택을 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소수의 혁명가에 의해 다수의 군중들은 그 혜택을 보며 살아간다. 그런 그의 용기와 남다른 생각을 지지하면서 이 소설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과격한 진보와 발전은 필시 그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불의 사용이 오히려 산불을 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가 하면, 발명가의 기술을 이용해 그 지위를 누려 독점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볼루션 맨들로 인해 지금의 인류가 지금의 모습으로 있다는 것은 이 책 제목인 <에볼루션 맨>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이 든다. 에드워드로 대변되는 많은 혁신가, 발명가, 인류애를 가진 그들을 기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인류에 기꺼이 기여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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