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기병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29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 지음, 권미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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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기병 - 상,하>

이책은 주인공 마누엘이 숙명과도 같은 나디아를 만남으로써 그녀에게 남겨진 유품 중 라미로의 사진들을 통해
그를 둘러쌓던 과거의 기억과 상처들을 돌아보고 회상하며 자신의 정체성 또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가족사인 외증조부를 비롯해 외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경우는 스페인의 비극적인 역사와 시대상황이 맞물려 표현되고 있다.
쿠바전쟁과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기간 등 전후 세대의 삶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사랑,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그저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즉 전쟁과 혼돈의 역사는 국민들에게 자기주도 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며 불행한 삶의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불우한 시대 상황은 우상시 되고 영웅의 삶을 사는 듯 보였던 갈라스 소령의 삶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자기에게 다른 운명은 존재하지 않은 듯 전쟁과 조국에대한 자신의 충성을 다하지만
가족을 등지게 하고, 사랑치 않은 여자와의 사이에 나디아의 탄생 등 굴곡진 삶을 살고 그에 대한 자책감과 회한을 담고 살아간다.

 
이런 마히나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삶 속에서 벌어진 하나의 미스터리 사건..
카사 테라스 토레스의 벽속에 생매장된 채 발견된 부패하지 않은 미라 여인의 발견과 사라진 시신..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에 다뤄진 그에 대한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채 등장인물의 설명 속에 간간히 들추어내기만 하여
갑갑증을 느끼기도 했고, 왜 저자가 사실적인 묘사와 내용속에 뜬금없이 그런 사건을 개입시켜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그 실체를 드러내긴 했지만, 어찌보면 그 여자 미라의 모습은
스페인의 비극적 역사 속에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빼앗긴 전후 세대들의 삶과 꿈들이 고스란히 생매장 당한 것을 상징하는 듯 생각되기도 한다.
사건의 사실과 전모를 알면서도 침묵한채 죽은 마누엘 외증조부의 모습은
스페인 역사의 상처와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않은 국민들의 심정과 마지막 자존심의 모습은 아닐런지...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어린시절을 보낸 주인공 마누엘은 그러한 앞선세대들의 삶을 닮고 싶지 않고
청년이되자 도망치듯 고향 마히나를 떠나  동시통역사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지만..
그의 삶은 결국 이방인처럼 행동하는데 익숙하고, 인스턴트적인 사랑에 허망함을 느끼며, 삶에 대한 확신이 서있지 않아
자취 없는 그림자처럼 부유하며 정신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한 마누엘의 삶의 모습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도시인들의 고독과 고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 생각되기도 한다.
자기 자신과 욕망 감정에 대한 불안.. 현실에 끌려다녔던 성급함..  점점 커져만 가는 맹목적인 조급함..
그런 인생의 두려움의 골격만 남아 있는 있는 마누엘은
나디아를 다시 조우함으로써 그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비로서 그의 방황은 정리된다.

그런 마누엘의 삶의 모습은  마치 나디아와 함께 하는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나눠지는 듯 보여지며
도망치려 했던 선조세대의 모습과 고향 마히나가 그동안 살면서 자신에게 속해 있었던
복잡한 상황들에 대한 이유와 소중함을 발견하며 아팠던 상처를 치유하며 정체성을 회복한다.

 

폴란드 기병의 그림에서 묘한 기운을 느껴 영인본을 구입하여 바라보던 갈라스 소령..
어찌보면 오로지 결정된 한가지 삶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는
늘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얼음장 같이 차거운 도전과 외로운 결심으로 일관했던 자신의 삶의 모습을
기병의 얼굴에서 발견하고 자신의 정신적인 자화상에 한줄기 위안을 받듯 바라보며 산 듯하다.

마찬가지로 마누엘 역시 상황은 다르더라도 삶에 대한 정신적인 고뇌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
폴란드 기병의 그림을 접했을 때의 신비스러운 기운을 경험한다.
마치 그림 속의 폴란드 기병은 그들에게 어떤 정신적인 위안과 구원과도 같은 느낌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 내용 중 저자는 패잔병처럼 늙어가는 초라한 노년의 삶의 모습에 대해 상세하게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다.
그 모습들은 삶을 저당잡힐 수 밖에 없었던 전쟁 전후 세대들의 말로가 음울하게 만들기도 했고,
청춘이 영원하지 않듯, 언젠가 우리 인생에서도 닥쳐 올 노화와 죽음 모습을 일깨워 주고 있는 듯 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그래서 찰나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어쩌면 그 영원같은 순간들의 사진들은 우리가 다시 보고 기억하고 회상하여야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묻혀져 버린 종이에 불과 할지도..
그런 의미에서 책 속에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스페인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삶의 모습들을 재조명한 것은 아닐지..

 

불완전한 사랑으로 형체는 사라지고 밀랍인형으로 남은 미라가 된 여인.. 라미로가 찍어 보관한 수많은 사진의 기록들..
무시할 수 없는 과거의 역사와 진실, 처참한 기억의 상처를 보듬고, 그 숨어있는 상처를 극복하고 화해하여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런 과정을 통하여 완전한 사랑과 삶을 꿈꾸는 마누엘 개인사와 스페인 역사의 앞날의 다짐과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스페인하면 정열의나라, 투우의 나라, 플라멩고, 레알 마드리드(축구)..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는데,
이책을 통해 스페인의 현대사와 4세대를 아우르는 그들의 삶에 대해 알게하는 기회가 되었고,
한편 한국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충돌을 경험한 우리나라 시대상황과도 비슷한 부분도 많아
역사와 세대간의 상황을 다양하게 접목시켜 생각해 보게하는 책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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