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 주식 클럽 -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
박종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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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이 만들어내는 보상 체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뇌의 보상 중추는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관장한다. 멋들어져 보이는 자기계발서에서 사실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는 명언 한 문장을 보면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도파민이 분비된다. 침대에 누워 배를 긁으며 SNS를 보고 있는 것뿐인데 '자기계발' 관련 피드가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클릭하게 되는 이유이다. 건강하고 선순환적인 방식으로 도파민을 이용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삶을 보다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쉽게 망가질 수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른바 '초심자의 행운'으로 동네 화투판에서 돈 만 원을 따는 것도 자꾸만 화투패를 눈 앞에 어른거리게 만드는데 카지노나 불법 도박판에서 돈 백 만원을 따면 누구나 눈이 돌아간다. 우리의 보상중추는 망가지고 웬만한 자극에는 쾌감을 얻지 못한다. 도박에 빠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에 빠지는 것은 '중독'이라 볼 수 있을까. 그보다, 주식에 '빠진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꾸준한 공부를 통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빠졌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누군가의 말에 이끌려 주식을 사고 파는 행위 자체에 몰두하는 것을 빠졌다고 할 수 있을까. '빠진다'라는 말을 '중독'의 관점에서 본다면 합리적인 근거가 없이 막대한 돈을 빚까지 내서 올인하는 행위는 주식에 빠진 것이 맞을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이처럼 주식에 미치도록 '빠져버린 것'을 '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식중독 또한 치료해야 하는 대상인 것도 맞을 것이다.

<구로동 주식클럽>은 주식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인생을 좀 먹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간단히 설명하면 그렇다. 스스로가 정신과 의사이자 한동안 주식 '중독'에 빠져 전 재산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저자가 현실에도 충분히 있음직한, 그러나 있지 않았으면 하는 세세한 인물들도 이야기를 꽉 채웠다. 또한 현실에는 어머니의 전세보증금을 탈탈 털어 몇 억의 대출을 받아 무시무시한 선물옵션에 분할도 아닌 '몰빵', '올인'을 하는 암울한 아들의 이야기가 더러 있을 것이다. 오히려 더 참담한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주식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상담하며 사람들의 '불안', '우울', '트라우마', '강박' 등을 낱낱이 뜯어보고 이해하는 과정.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정신적인 치부를 지니고 있겠지만, 막대한 돈이 달린 사람들은 그러한 치부가 훨씬 더 강력한 방어 기전의 이유가 된다. 수억 원을 날렸는데 나름의 변명거리조차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저자 스스로의 경험이자 그가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인물'들은 때로는 거부감이 들 정도로 혐오스럽다. 문제는 누구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식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보다 큰 행복을 위해, 때로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때로는 그저 심심풀이로 접근했던 주식판에서 돈을 따고 잃는 과정은 우리의 뇌를 철저히 망가뜨릴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뇌가 주가창, 매매 버튼에 완전히 절여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도 우리는 과연 상담을 받으러 갈 수 있을까? 과연 스스로를 인정하고 치료의 손길을 구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구로동 주식클럽, 이른바 '구주' 클럽의 이야기는 영원히 픽션 속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로만 남았으면 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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