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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박정은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평점 :
인간의 의식을 기계에 이식할 수 있는 시점인 '특이점'. 의료기술의 힘을 빌려 불치의 병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이미 100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길어진 기대수명을 늘이려는 노력. 더 건강하고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신체를 가공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기계에 옮기려는 다소 비인간적인 꿈까지 꾸게 만들었다. 그렇게 늘어난 수명과 팽팽해진 피부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단순히 하루하루 스쳐지나가는 삶을 100년 늘인다고 해서 우리는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고. 50대에 접어들면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살아야 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코로나19로 완전히 뒤바뀐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살아야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다고. 지구를 살아가는 80억 명 모두가 저마다의 불확실성과 불연속성 속에서 인생을 채워나가는 가운데 일종의 '비기'처럼 전해지는 책들은 삶이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을 다소 무시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모두의 삶이 천편일률적으로 확실성 위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자신들의 경험과 논리가 절대적이라는 어조이다. 인간의 삶은 불확실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저마다의 가치관과 행동, 그리고 방식으로 완성된다. 완성되지 않더라도 결국 완성된다. 그 삶을 오롯이 책임지는 것은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은 유한성과 불확실성이라는 비정하지만 당연한 인간다움 위에서 팽팽하게 돌아간다. 저마다의 이유로 외면하고, 무시하고, 놓치고 있는 점이다.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는 수녀이자 교육자인 저자가 수십 년 간 머나먼 미국 땅에서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일궈낸 작은 '삶의 조각'들을 엮어낸 책이다. 그녀가 전하는 삶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사회의 모습들을 이야기 할 때에는 '줌'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간의 차이를 논하기도 한다. 무언가 대학이라는 교정에서는 공신력을 얻지 못할 듯한 위키피디아에 얽힌 젊은 날의 자신과 지난 날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육자로서 그리고 한명의 성직자로서 50년에 걸쳐 진행된 생각의 축적을 풀어내기도 한다.
가르치려들지 않는 글이기에 오히려 더 배울 점이 많은 듯 느껴진다. 저자는 특별히 거대한 주제를 가지고 촘촘하게 이어지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저 거닐며, 공부하며, 또 가르치며, 어울리며, 생각하며 느껴졌던 작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던 듯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은 오히려 더 강하다.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이기에 소위 삶을 일깨워준다는,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다는 책이 쏟아져나온다. 순간 강렬한 자극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고픈 욕구를 일게 만들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시장의 규칙 속에서 양산된 책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펴보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저자의 책은 그렇기에 오래 남는다. 메모와 일기와 기록을 하는 사람의 인생은 보다 촘촘하다는 저자. 확고한 생각들로 가득찬 걸음을 매일 걸어온 그녀의 삶은 다른 이에게 깊은 충격을 줄만큼이나 촘촘하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