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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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마약청정국이라는 칭호를 자랑스레 여겼던 한국이 아니다. 얼마전 유명인을 비롯하여 마약 사범들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고 마약운반책이 하루가 멀다하고 적발되는 것은 물론 운반 과정 중 사고로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덕분에 한동안 마약의 기원부터 마약의 작용 원리, 중독성, 그리고 마약중독자의 비참한 말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떠올린 생각은 마약은 인간 역사상 최악의 발명품이자 그럼에도 놀라울 정도로 유혹적인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약은 언제부터 이토록 인간을 황홀하게 유혹하였으며 절망적으로 파멸시켰을까.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는 그저 "각성제", "영양제" 정도로 치부했던 마약을 통해 인류가 전쟁에서 어떤 일들을 저지를 수 있었고, 당시의 세계가 어떤 참혹한 광경 속에 휩쓸렸는지를 조명하는 책이다. 단순히 마약류 약품의 무시무시한 중독성이나 군사적인 악용 사례 등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약을 수억 정이나 개발하며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나치 독일 뒤에 숨겨진 비밀까지 함께 파헤친다.

페르비틴, 현대에 이르러서 메스 암페타민이라 불리는 강력한 환각제는 그저 각성제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것을 만들고 장병들에게 실험하고 보급했던 많은 화학자와 생리학 장교들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페르비틴 한알이면 며칠 밤낮을 새며 진군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예술가와 문학가들도 전쟁 속에서 부모에게 페르비틴을 구걸하며 거부할 수 없는 환상에 대한 욕망을 채워나갔다. 독일이 전 유럽을 상대로 거대한 진격을 해야 할 때, 마약류 약품은 당시 세계 최고의 약품 생산국가 중 하나였던 독일의 인프라와 함께 '군수품'이 되고 말았다. 수천 만 명의 군인들은 마약을 통해 오늘날의 현대화된 장비와 전술로도 도무지 소화할 수 없는 엄청난 거리를 행군했다. 그리고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적들과 대치하고 싸웠다. 그들은 모두 치명적인 중독에 빠져 전쟁 중에도 막대한 고통 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나치 독일의 마약 보급은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동시에 일깨워준다. 오늘날의 전쟁에서 군인들이 공포와 피로를 이기기 위해 마약류를 섭취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옛날 80년 전에는 그랬다. 그렇게 강력한 환각제에 중독된 장병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때 퍼져나간 마약은 일반 사회에도 끈적끈적하게 녹아들어 사람들을 검게 물들였다. 평온한 사회에서도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마약이 전시 상황이라는 특수한 '변명' 앞에서 국가적으로 동원되었을 때 인류 사회가 얼마나 참혹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약이 가져다준 고통 뿐만 아니라 전쟁 자체의 참혹성에도 눈길이 간다. 인간을 극한을 넘어 반죽음의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군 상부의 비인간적인 행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마약이 곁들여져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이 되어버린 전쟁의 한복판은 도무지 쉽사리 묘사하고, 읽어내고, 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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