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의 세계 - 프로그래머의 눈으로 본 세상, 인간, 코드
데이비드 아우어바흐 지음, 이한음 옮김 / 해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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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춘기가 조금 지날 때까지도 인문학과 언어학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던 저자는 덕분에 컴퓨터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갑작스레 기계의 언어에 빠져드는 바람에 인간의 추상적이고 복잡한 언어와 한결 멀어졌지만 여전히 두 세계를 잇는 '언어'라는 개념은 저자의 특별한 취미 중 하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MSN 메신저와 관련된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뒤이어 구글에서도 핵심적인 엔지니어로 일할 정도로 프로그래밍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짧막한 글과 매체에 실릴 에세이를 쓸 정도였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컴퓨터와 인간, 인간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를 다뤄온 저자는 이성과 감성, 논리와 추상을 넘나들며 언어와 통합의 미학을 보여주려 한다.

<비트의 세계>를 통해 저자는 그럼에도,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더 큰 애정을 품고 있는 컴퓨터 언어를 흥미롭게 묘사한다. 직관적이고, 논리적이고, 명료한 컴퓨터 언어에 묘한 선호도를 나타내고 가끔씩 각별한 편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끼는 비트의 세계만큼이나 인간의 언어와 소통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한다. 책은 컴퓨터 언어와 인간 언어의 특징을 번갈아가며 조명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의 기준에서) 쉽게 짜인 코드는 결코 쉽지는 않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인간의 언어" 덕분에 명료함을 지니게 된다. 반면 인간의 사고와 언어 체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철학이라는 학문까지 낳게 되었다. 저자는 여기에 자신이 수십 년 동안 그려온 수백 만 줄의 코드를 이용하여 나름의 신념을 덧붙인다. 철학자나 사회학자, 인문학자 등 인간 사회의 문제를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흔한 학자와 달리 비트의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점이 나름의 신선함을 가져다주는 대목이다.

특히 코드를 짜는 것과 인간 사회, 그중에서도 특히나 결혼 생활, 교우 관계, 사회 생활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점을 비교하는 점은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덜 약속하고 더 해주는 것이 좋다는 말을 베이퍼웨어를 피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나, 고치지 않으면 프로그램 속에서든 결혼 생활 속에서는 버그는 다시 나타난다고 이야기하며 웃음과 느낌표를 함께 띄우는 유머까지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코드의 위대함을 경배하거나 코드를 잘 짜는 법, 컴퓨터와 같은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는 법 등을 일장연설 하지는 않는다. 단지 "언어"라는 소통의 도구를 각별히 좋아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여러 세계를 연결한 경험을 이야기할 뿐이다. 덕분에 주로 어느 한쪽에 오래도록 머무는 사람들에게 달리 보는 시각을 선물할 듯 하다.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할 수도 있을테고.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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