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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를 찾아서 - 한스 로슬링 자서전
한스 로슬링.파니 헤르게스탐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에는 살리는 이야기보다는 죽는 이야기가, 짓는 이야기보다는 부수는 이야기가,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자주 등장한다. 부정적인 뉴스에 말초 신경이 곤두서는 이유를 딱 하나 짚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듣기 좋은 소식보다 듣기 싫은 소식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곧 돈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당장 우리가 태어났을 무렵과 비교하면 거의 대다수의 지표가 더 나아졌음이 분명해도 세상은 점점 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만 같다. 이건 우리의 나이가 5살이든, 10살이든, 40살이든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이미 경제 수준이 상당히 발달한 소위 선진국에서 시선을 조금 돌려, 전 세계로 확장한다면 대다수의 대륙이 수십 년 전에 비해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유아 사망률, 의료 인프라, 문맹률 등 많은 지표를 통해서 높아진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우리의 인식은 그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미디어 매체에 의한 착각일 뿐일까? 아니면 그저 우리가 통계학 뒤에 숨겨진 진실을 보지 못하여 발생하는 오류일 뿐일까.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의 노동자 계층 집안에서 태어나 의학을 전공했고 모잠비크 등지에서 광범위한 의료 연구를 진행했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교육은 사치일 뿐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방 세계 중심의 연구 및 통계 시스템에 한계를 느낀 그는 "진짜" 세상을 보고자 노력했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팩트풀니스>를 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달리 세상은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우리는 제대로 된 통계학적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중요한 책.
비록, <팩트풀니스>가 전하는 이야기 또한 편향적인 통계의 오류를 품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한스 로슬링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제3 세계 국가에서의 통계 연구 자체는 고결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국제 기구가 몇몇 지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집하는 불완전한 데이터가 아닌, 척박한 땅에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통해 얻어낸 보다 날것의 데이터.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든, 나빠지고 있든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되려 원래 지니고 있던 생각에 더하는 확증편향이 되거나, 염세주의를 강화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뿐이다. 그보다는 <팩트풀니스>라는 센세이션 뒤에 숨겨진 한 의학자의 진실한 노력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물결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팩트풀니스를 찾아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찍혀나오는 통계에서 벗어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던 한스 로슬링의 자서전이자 유작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통해 의사가 되고자 마음 먹었던 저자는 마음 맞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서방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겨지던 일들이 통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1명의 환자를 살릴 것인지, 만 명의 환자를 돌볼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윤리적인 고민에 휩싸였다. 대규모의 기근 속에서 빈민촌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먹었던 작물이 집단 마비 증세를 만드는 가운데 제3 세계 국가에 맞는 의료 연구를 구상할 수도 있었다. 한 명을 살리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아닌 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그렇게 수십 년을 통계학 연구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저자가 의사에서 연구자로, 연구자에서 강연자로, 마지막에는 다보스 포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 방향성을 수정한 까닭이 잘 녹아 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떠난 아프리카 땅에서 예상치 못한 환경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사실적이라 책장을 넘기고픈 마음이 들 정도이다. 때문에 <팩트풀니스>의 주된 골자 자체에는 다양한 시각을 견줄 필요가 있지만 저자의 진정성은 차마 의심할 수가 없다. 어쩌면 수많은 이들이 한스 로슬링의 고민과 결심을 보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뛰어들 것임이 당연할 정도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세계가 변화한 그 결과보다는 저자가 만들어간 과정에 집중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건 분명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