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억울하게 죽은 자는 더더욱 말이 없다. 다만 죽어가면서 남긴 흔적들을 전문가들이 관찰하고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법의학자는 그래서 매일 시체를 만난다. 창백하게 식어간, 또는 참혹하게 훼손된 시신을 마주하는 것은 어느 때고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죽은 자의 억울함을 밝혀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사명감을 가지고 직업에 임한다.



그런 법의학자마저도 죽은 자의 신호를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인적이 드문 배수로에 유기되어 최소한 1년 이상 방치된 자는 사실 많은 부분이 사라져 있는 상태이다. 더구나 길을 지나던 운전자들이 버린 쓰레기와 각종 오물이 배수로를 뒤덮고 있어 시신의 사후 훼손 정도도 심하다. 적어도 그가 사망한 시간이라도 알고 싶은데. 알아내기 쉽지 않다.



이때 한 줄기 희망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의곤충학자나 법의 식물학자이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앞의 "법의"라는 단어를 빼면, 평범한 곤충학자이고 식물학자이다.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곤충이나 식물 등을 그 어느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전문가이자 집중력 있는 학자이다. 경찰들은 때로 곤충이나 식물 전문가에게 범죄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청한다. 어떻게?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한데 견딜 수 있겠느냐는 선제적인 물음과 함께. 메일로 전송된 날것 그대로의 사진을 보고 굳은 의지가 생긴다면 박물관에서 사람들을 안내하고 생물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출동한다. 그리고 "법의"식물학자가 된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법의 식물학자인 마크 스펜서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식물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물론 아마존의 삼림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인 20~30명이 껴안을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 수백 그루가 벌목 되고 있지만, 인간은 더러 식물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인간이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나 과일은 인간의 서식지 근처에 사는 식물들에게 좋은 양분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인간 스스로가 좋은 양분이 된다. 꽤나 큼직하고 갖은 영양소를 잔뜩 섭취하여 성장한 개체가 아닌가. 그런 개체가 땅에 쓰러져 오랜 시간 방치되어 마침내 썩게 된다면, 많은 식물 군체는 까맣게 변색된 시신과는 상반되는 초록색 빛을 띄며 빠르게 성장한다. 법의 식물학자는 시신을 뒤덮은 식물을 보며 방치된 시간을 추정하고, 누가 언제쯤 시신을 옮기려 시도했는지 추측한다. 유기할 때 어떤 방식으로 옮겼는지도 추정할 수 있다.



저자는 전문적으로 법의학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시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신과 함께 했던 식물을 본다. 식물 또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자를 대신해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개체이다. 사망한지 오랜 시간이 된 시신은 경찰들에게 큰 난제를 던져준다. 어쩌면 법의학에 이어 법의 식물학, 법의곤충학 등 분야가 나타나게 된 것은 죽은 자의 억울함을 어떻게든 풀어주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의지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제까지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시신을 둘러싼 자연의 생태계를 통해 가능하게 된다. 덕분에 스스로가 박물관에서의 삶이 지루했다고 하던 저자 또한 섬뜩한 시신을 보러 현장에 출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죽은 자와 죽은 자가 살려낸 식물 생태계가 만드는 모순을 더욱이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경이로움과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죽은 자를 묘사한 장면은 두어 차례 읽을 수 있었던 법의학 관련 책보다 조금 더 강렬했다. 아마 법의 식물학자를 불러야 할 정도로 시신의 유기 기간이 오래되고, 참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묘사 뒤로는 진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식물과 죽은 자의 안타까움이 숨어 있었다. 허나, 법의학을 이어 법의 식물학, 법의곤충학 등이 발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죽은 자를 달래줄 방법은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는 듯하다. 모쪼록 언젠가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이도, 영영 억울함 속에 파묻혀 있는 이도 없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식물이 전하는 다잉 메시지,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였습니다.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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