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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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 흑역사는 말 그대로 지우고픈 과거다.

페이스북 인기가 한창이던 2010년대 초반, 많은 대학생들이 흑역사를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흑역사를 싸지르던 나 또한 얼마 후

눈물을 머금고 부끄러운 글을 하나씩 지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던졌던 말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글들,

술 마시고 남겼던 또 다른 나의 동영상.

시간을 돌리고픈 흑역사는 누구에게나 있고

대부분의 흑역사는 그저 부끄러운 기억일 뿐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이성을 지닌 존재들.

매 순간 논리와 지성으로 빼어난 업적을 남겨온

과학자들에게도 흑역사는 존재할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과학자도 한낱 부족한 인간일 뿐이다.

이성적인 순간보다는 비이성적인 순간이 많고, 논리보다는 비논리로 세상을 살아기도 한다.

덕분에 현대인은 도서관에서, 스마트폰 안에서, 뉴스 속에서

스티븐 호킹이나 아인슈타인, 프란츠 하버 등이 저지른

충격적인 '흑역사'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술 취한 사진보다는 영향력이 컸던,

때로는 인류 과학사를 뒤흔들고, 때로는 과학자의 명성을 와장창 깨부순

'과학자의 흑역사'는 무엇이 있을까?

<과학자의 흑역사>는 천문학 / 화학 / 물리학 / 수학 / 생물학의 5가지 분야로 나누어

저명한 과학자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오류와 실수를 폭로하는 책이다.

스티븐 호킹이나 아인슈타인이 흑역사를 저질렀다고 말하지만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은 그냥 설명해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덕분에 책은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겨짚는 '흑역사' 백과사전이 아닌

과학의 주요한 다섯 분야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장이 된다.

각각의 인물들이 이불킥을 뻥뻥 찰 만한 오류를 범하기 전에,

어떠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며

극의 반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가한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학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위인들이었다.

오일러는 수학의 '위인'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라부아지에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가 명백히 맞다.

갈릴레이가 남긴 업적은 2021년에도 여전히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가.

위대한 인물들이 자신의 고집, 오만, 실수, 착각, 기술상의 문제 등으로

저지른 '오류'는 덕분에 극을 더욱더 짜릿하게 만든다.

본문으로

■ 진화론에 진심이지 못했던 퀴비에

박물학자이나 생물학자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던 프랑스의 '퀴비에'. 그는 일찍이 거대한 단층에서 시간에 따라 생물종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진화론의 증거를 찾아냈다. 그러나 당시는 종교와 신앙이 힘이 막강했던 시대. 종교적 교리에 어긋나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급진적인 일이었고 되레 진화론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진리를 향한 지적 탐구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과학자의 사명이라 하지만, 실상은 보수적이고 몸을 사리는 과학자들이 대다수이다. 퀴비에 또한 덕분에 '진화론'이라는 역사적인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기회를 영영 잃고 말았다.

■ PCR(중합 효소 연쇄반응), 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연루된 거대한 소송

몇 번을 받아도 불쾌감과 찡그림을 피할 수 없는 코로나 검사. 코로나 검사 덕분에 PCR, 즉 중합 효소 연쇄반응이라는 기술이 다양한 매체에서 주목받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복사기로 종이를 복사하듯 유전자를 순식간에 무한대로 복사할 수 있는 PCR 기술은 캐리 멀리스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만들어줬다. 그런데 PCR 기술이 상용화된 이후 캐리 멀리스가 속했던 회사인 '세터스 코퍼레이션'과 그 유명한 '듀폰' 사와의 소송전이 벌어졌다.

'듀폰'은 '아서 코라나'를 앞세워 PCR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연구를 캐리 멀리스가 아닌 아서 코라나가 먼저 했다는 것. 그러나, 코라나 스스로가 인정했듯, PCR이라는 기술 상용화를 이뤄낸 것은 결국 세터스 코퍼레이션과 멀리스였다. 그러니,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봤어야지.

■ 원자론을 주창했지만 고집이 너무 셌던 돌턴

존 돌턴은 고대의 원자 가설과는 차원이 다른 '원자론'을 제창했다. 덕분에 프랑스에서 왕보다도 극진히 대접받는 슈퍼스타가 될 정도였다.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덕에 책에 몰두했던 나날이 있었고 대기를 연구하며 공기의 구성 성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공기로부터 원자론을 생각해 낼 수 있었지만, 더는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

자신의 원자론에 금이 가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동료 과학자들의 의문을 날카로운 공격으로만 받아들였다. 돌턴이 조금만 개방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내 등장할 아보가드로의 '분자 이론' 또한 돌턴의 것이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저지른 흑역사는 스스로의 고집에서, 세간의 시선에서, 부족한 기술 등에서 비롯됐다.

이유야 어떻든 과학자들의 오류는 흑역사였을지언정 '죄'는 아니었다.

그 유명한 오일러조차도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은 더욱 발전했다.

현대에 와서 돌이켜보니 흑역사였던 과거의 눈부신 발전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한 단계 성장시킨 '역사'였다.

과학자들의 흑역사는 결국 도전과 전진의 결과다.

흑역사 이전부터 위대한 발걸음을 옮겨왔던 인물들이었기에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온 몇몇 실수들이 흑역사로서 기록됐다.

그들의 후배들은 위인들의 흑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다시 한 걸음 나아갔고 결국 인류는 오늘날의 문명을 세웠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오늘도 흑역사를 세우러 길을 떠난다.

실수와 오류가 두려워 답보하는 과학자에게 위대한 진보는 없기에.

인류의 진보는 과학자의 흑역사로부터, <과학자의 흑역사>였습니다.

* 본 리뷰는 현대지성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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