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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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번의 세계대전이 있었던 가장 파괴적인 시대 20세기.

한 세기의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유럽은 두 번의 참극을 겪게 되었고 수억 명이 희생되었다.

덕분에 흔히들 우리가 생각하는 1950년 이전의 유럽 대륙은

참호나 폭격, 폐허, 반쯤 미쳐버린 군인들로 가득 차 있다.

각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화약이 유럽 대륙으로 향할 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전시가 아닌 유럽은 지극히 평범한 곳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이 남아있었고 르네상스의 영광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특히나, 바로 그 '독일'은 깔끔하고, 친절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행자들의 눈에 평화롭고 안정된 땅이었던 전후 독일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누가 그렇게 보고 들었을까?

누군가의 눈에 그토록 평화롭고 친절한 독일 땅은 어떻게 다시 한번 전쟁의 광기를 드러내는

전범국가가 되었을까?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

음침한 속내와 기묘한 평화가 공존하던

유럽 대륙, 그중에서도 독일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독일의 진짜 모습을 알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름 모를 여행자들, 각국에서 파견한 특수한 임무를 띤 스파이들, 독일의 선전공세에 매료된

학자들, 올림픽 참가를 위해 독일을 찾은 선수 등 거대한 역사 속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은 나치 독일의 치밀하면서도 잔학하며 기묘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저자 줄리아 보이드는 이제 막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을 비추며 장대한 역사의 서막을 연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고 있는 독일 경제,

그럼에도 바이마르 공화국은 낯선 여행자의 시선에 지극히 안정된 곳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채 3~4년이 되지 않은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갈하고 정돈된 베를린 시내, 누구에게나 친절한 독일인이 보였다.

그럼에도 장차 거대한 악의 꽃이 될 씨앗은 자라나고 있었다.

아니, 곳곳에 뿌려져 독일을 물들이고 있었다.

'갈색 셔츠'의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당, 이름이 너무 길다고?

그 이름도 유명한 '나치'였다.

히틀러와 루덴도르프는 이미 국가와 정부에 반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적이 있었고

5년형을 선고받아, 실제로는 9개월의 형을 살았다.

이때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자가 풀려난 것이 의문스러울 뿐이다.

나치 독일이 점령한 독일은 희뿌연 회색빛의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아이를 탐하는 독일 장교(다른 나라의 장교들 또한 '보이 바'를 찾았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서 잃어버린 자유를 벌거벗음으로써 찾고자 한 사람들,

올림픽 행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나치의 프로파간다 등.

깔끔한 매력의 독일에 반해 오래도록 독일에서 공부한 학자도,

우연히, 또는 어떠한 목적으로 독일을 찾은 여행객들도

독일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반 유대주의와 극심한 인종차별을 일삼는 곳이라 알고 있었지만

막상 평화롭게 유대인 회당을 찾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독일인이었다.

이처럼 나치 독일은 히틀러와 수뇌부의 지휘 아래에 세계 최대의 프로파간다 조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독일의 전쟁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파견된 전문가들조차 홀려 버렸고

많은 에세이스트들이 독일을 아름다운 곳이라 찬양했다.

덕분에 나치 독일은 다시 한번 참혹한 전쟁 준비를 끝마치고 독소 불가침 조약을 스스로 파기함으로써

20년 만의 세계대전을 열어젖혔다.

책은 독자에게 2가지를 전한다.

먼저,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희대의 악역을 자처한 독일에도

아름다운 모습과 평화로운 나날이 있었다는 점이다.

전범국가라는 이미지와 너무나 강력한 세계대전의 몇 가지 표상들 때문에

전쟁 직전과 직후의 유럽 대륙은 '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은 전쟁 중에도, 전쟁 전에도, 전쟁 후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로만 대표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두 번째,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던 독일은 다시 한번 세계대전의 참혹한 주동자가 되었다.

세계인을 향한 프로파간다와 위장, 정치 공작 덕분에 숨길 수 있었던 시커먼 속내였다.

오늘날도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고, 무언가에 포장되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후대에 기록될 거대한 포화 속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언제나

진실을 꿰뚫기 위한 날카로운 생각과 눈을 지녀야 하리라.


* 본 리뷰는 페이퍼로드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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