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라이팅 시작하기 - 고객 경험 관리를 위한 메시지 가이드
권오형 지음 / 유엑스리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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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제발 읽어줬으면 하는 사용설명서도 제대로 읽지 않는 사용자들이 불만이 생기면 기업의 모든 메시지에 반응한다. 양해를 '부탁'드리는 게 아니라 '구한다'라고 시비를 걸고 사죄의 문장이 자신의 마음에 들 만큼 길지 않아 또 한 번 화가 난다. 입주자 모집 공고문에 기재된 당구장 표시 옆 문구도 제대로 보지 않으면서 꼬투리 잡을 때만 '톤앤매너'를 따지는 고객들이, UX 라이터들은 밉기만 하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이 익숙해지면서 UX라는 단어도 흔한 단어가 되었다. 구매율을 높이는 버튼 배치나, 사용자가 보다 오래도록 머물게 만드는 상품 페이지 구성, 시큰둥해진 고객이 뒤로 가려고 할 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 등 사용자에게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떠올리는 UX에 대한 이미지 중에서 UX 라이팅, 즉 '글'과 관련된 것은 많지 않다.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글인데도 말이다.


쿠팡에서 '고인 물'이 되도록 CS 메시지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자리를 옮겨 무신사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른 글을 관리하고 있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와 파트너사의 성장을 중요시하는 회사는 분명 중심에 두고 있는 철학이 다르다. 그러나 회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글이 가지는 중요성은 여전하다. 신문기자, UX 라이터, 카피라이터 등 소위 '글밥' 경험만 10여 개가 넘는 저자는 기업 차원에서 글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작은 조언을 건네고자 펜을 들었다.


<UX 라이팅 시작하기>. 글은 결국 가장 큰 책임을 지운다. 딱딱한 보고서든, 매력적인 광고 모델이 나오는 브로슈어든 글은 태어나는 순간 무거운 힘을 가진다. 우연히 페이지를 찾은 사용자들이 접한 짧은 문구도 마찬가지이다. 서체, 글자 크기, 문장의 구성, '아'와 '어'의 차이는 마케터들이 목매는 전환율이니 구매율이니 하는 '지표'에 영향을 미친다.

'공지사항'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달고 등록되는 글은 더하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동시에 진중해야 한다. 8살짜리가 이해할 수 있는 진중한 글이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소비자는 보지도 않는 '성분표'는? 혹시나 있을 불상사에 대비해 나트륨 3g, 분리 대두 2g 등이 기재된 빵 봉지 뒷면은 법무팀의 문안 검토를 받아야 할 지경이다. 제품에 불만이 생긴 소비자가 정식으로 항의라도 한다면, '공식' 발송되는 메일은 담당자가 맡았던 업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고객 경험이란 말 그대로 고객이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접하며 느끼는 모든 경험을 일컫는다. 그리고 고객 경험의 과정 중 글이 빠지는 곳은 거의 없다. 기업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UX 라이팅에 진정성과 고뇌를 담아야 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고객과 접촉하는 메시지 관련 담당자라면 국립국어원과 결혼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외래의 올바른 표기는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여사로 헷갈리는 띄어쓰기 등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그저 기본일 뿐이다. 안내, 사과, 홍보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톤앤매너'를 능숙하게 조절해야 한다. 동시에 간결성과 명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쯤 되면 정말 '글밥'은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닌 듯싶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구구절절 수긍할 수 있다. 기업의 글은 기업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입사한지 하루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썼든, CEO가 썼든 고객은 자신이 경험한 그 글만을 떠올릴 뿐이다. 무의식적으로 경험했던 찰나의 글귀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구성된 글과 문장은 고객을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도 있다. 좋지 않은 일 때문에 쓰인 글은 기업을 어떤 의미로든 화제가 되게 만들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적절하지 못한, 성의 없는 사과문으로 뭇매를 맞은 기업을 좀 더 빠르게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UX 관련 업무 담당자나 고객 관련 메시지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읽을수록 글의 무거움과 어려움을 느낀다. 허나 그토록 무거운 글이기에 잘 쓰인 글은 강한 힘을 가진다. 글은 언제나 세상을 지배해왔다. 파피루스에 이집트 왕조를 기록할 때부터 심지어 책이라곤 거의 보지 않는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글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전파되는 지금이야말로 글의 전성기는 아닐까. 고객을 사로잡고, 시대를 사로잡고 싶다면 올바른 글에 몰두해야만 한다.


고객을 넘어 시대를 사로잡는 글, <UX 라이팅 시작하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유엑스리뷰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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