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포이트리
좌용주 지음 / 이지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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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도와 호주 대륙은 물론 미국 땅이 붙어 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그 머나먼 과거를 인간의 지성이 감히 시간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의 최초의 대륙은 오늘날의 지구 땅덩어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작았다. 하나로 뭉쳐 출발했던 대륙이 맨틀의 대류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분열되고, 다시 합쳐지면서 새로운 땅이 생겼다. 그야말로 거대한 대륙. '초대륙'이었다.

베게너를 기억할 것이다. 지도를 보다 대륙을 퍼즐 조각으로 보고 '판게아'라는 완성된 퍼즐을 완성한 인물. 곤드와나-판게아 초대륙으로 대륙이동설을 접해왔기에 지구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초대륙은 판게아였을 줄 알았건만. 판게아는 그저 가장 최근의 초대륙일뿐이다. 10억 년 전, 15억 년 전에도 지구 땅의 75% 이상은 한 덩어리였다. 합쳐질 때 적어도 2억 년이 걸리고, 분열될 때 적어도 1억 년이 걸리는 장구한 이동. 1억 년쯤 더 살 수 있다면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은 미국이나 호주쯤에 붙어 있지 않을까.

우주의 시간을 논하며 흔히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곤 하지만 인류는 우주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46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를 깊이 탐구하는 순간, 인간의 시간은 그 개념을 잃고 만다. 펄펄 끓는 땅이 생기고, 바다가 생기고, 생물이 생기고, 인류가 생기는 그 장엄한 역사. 지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유기체이다.

<지오포이트리>라는 제목은 실로 저자의 마음과 책의 내용을 정확히 담아낸 단어이다. 우주와 태양, 그리고 지구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경이로운 '단위'를 공부하고 생명의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 46억 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여행하는 것은 분명 '오디세이아'에 가까운 일이지만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은 '포이트리'로 불리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다.

인류는 지구를 이토록 몰랐을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러했다. 지질학적으로 단서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아무런 것도 새겨지지 않은 '명왕누대'. 46억 년 전의 역사가 여태 남아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놀랍지만, 지구는 더 큰 놀라움을 선사한다. 15억 년 전을 거스를 수 있는 확연한 흔적들을 지층 곳곳에 남겨놓은 것이다.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거대한 협곡이나 우연치 않게 표토에 드러난 거대한 단층은 켜켜이 지구의 시간을 남겨 두었다. 지질학은 그렇게 땅의 깊은 면모를 살펴보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야기는 지구라는, 마찬가지로 우주적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우주적 단위로 새어든다. 태양은 그저 우주에 떠도는 작은 별일뿐이며, 실제로 1초에 220km를 날아가고 있다. 태양계가 함께 움직이기에 저 하늘의 해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내 은하계의 충돌을 다룬다. 흔히 인간의 편협한 사고 안에서 은하 또한 수평으로 이동할 것이라 착각하지만 은하와 은하 간의 충돌은 모든 방향에서 이뤄지는 다중 추돌 사고다. 심우주의 어느 한편에는 충돌의 흔적을 간직한 은하들이 숨 쉬고 있다.

생명을 소개하기에 앞서 기적과도 같은 지구의 물을 빠뜨릴 수 없다. 태양과의 거리를 생각해 볼 때 지구에 이토록 많은 물이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덕분에 외계의 거대한 천체가 충돌하며 물을 공급했다거나, 동시에 달의 생성에 관한 가설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생명체가 탄생하여 수억 년의 시간을 고요히 흘려보낸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로 지질학자들은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수억 년을 조용히 지냈던 생물종이 갑작스레 분화하여 무수한 화석을 쏟아냈다. 이토록 놀라운 경이를 보여주는 생명은 마침내 '호모' 종을 낳는다. 지구를 지배하는 위대한 거인이자 지구에 기생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구의 시간을 24시간으로 본다면 자정이 되기 1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모습을 드러낸 인류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피어난 미약한 존재인 주제에 지구의 깊은 역사를 파헤치고 거대한 문명을 일궜으며 마침내 지구를 파괴하려 든다. 미(美)와 추(醜)를 두루 지닌 인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인류라는 티끌만 한 이름은 양껏 덜어낸 채 오롯이 지구의 토양과 대기와 물로 채워나간 시간이었다. 지구가 처음 단단하게 뭉쳤을 때 즈음에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보다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모든 생명체의 조상이라 불리는 LUCA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바다 가득한 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욱 아쉬워질 뿐이다. 겨우 수십만 페이지의 글로써 알려진 지구의 일부분. 지구의 모든 역사를 마침내 알게 되어 글로 옮겨 적는다면 적어도 지구에서 달까지의 간극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토록 일부의 역사만으로 책을 아름답게 꾸미는 지구의 모습에 그저 아름다움을 느낄 뿐이다. 그저 지구의 품이 보다 오래도록 아름답게 바랄 뿐이다.

오디세이아 부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지구라는 시, <지오포이트리>였습니다.

* 본 리뷰는 이지북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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