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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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세기의 첫 번째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바이마르 공화국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 문제로 야기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10만 마르크가 다음날이면 10억 마르크가 될 정도였다. 거기에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있던 히틀러와 루덴도르프는 청년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켰다. 3일이 채 안 되어 진압되었지만 히틀러는 5년 형을 선고받았고 실제로는 9개월의 수감 생활을 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를 혼란시키는 세력의 등장. 그럼에도 독일은 전후 10년 만에 세계 2위의 산업 생산국이 되었다. 인근의 영국이 전후 삭막하고 불안정하고 생기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사뭇 대비되는 일이었다. 나름의 인상적인 분위기는 산업이나 건축물의 모습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독일은 남자애들을 찾는 남자들의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대형 '보이 바'가 거리 곳곳에 있었고 각국에서 온 장교들은 사랑을 찾았다. 동성애뿐만 아니라 독일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몇 년 전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전쟁의 악몽 속에서 사랑하지 못했던 욕망이 불타올라서였을까.

전쟁 기간 동안 부족했던 것은 '햇빛'으로 상징되는 자유였다. 자유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고 마찬가지로 당연스럽게도 전쟁이 끝났으니 어떻게든 자신의 모든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해변에는 거의 벌거벗은 여성들이 돌아다녔다. 수영복 바지 차림에 상의는 걸치지 않거나 브래지어만 입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노동자들도, 심지어 귀족 저택의 정원사들도 웃통을 벗고 햇빛을 받아 시뻘게진 상체를 드러냈다. 억압 따위는 없다는 듯이.

그렇게 '섹스'와 '햇빛'은 혼란을 잠시 종식시킨 바이마르 공화국의 작은 상징이었다. 그리고 '갈색 셔츠'의 청년들은 당파적인 사상과 움직임을 바탕으로 조금씩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조용해진 독일이 다시 시끄러워질 참이다. 청년들이 속한 단체의 긴 이름을 가리켜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치'라고.

* 본 리뷰는 페이퍼로드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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