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구마 겐고 지음, 송태욱 옮김 / 안그라픽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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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와 함께 일본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구마 겐고. 팍스 로마나의 시대에 로마인들이 적벽돌로 수도교를 쌓을 때에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미국식의 국제주의 건축이 콘크리트로 회색 괴물을 쌓아 올릴 때에도 건축의 본질은 공간과 인간이 만난 철학이었다. 그는 적어도 일본의,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들과 미래를 살아갈 후대의 건축가들이 나무, 돌, 콘크리트, 유리, 때로는 독특한 구조물로 완성시킬 공간에 대해 진중한 고민을 하길 바랐나 보다. 근대 건축의 4대 거장이라 불리는 건축가들을 자신만의 시선에서 비판했고, 북적이지만 삭막한 도시와 듬성듬성하기에 생각의 틈이 많았던 시골에서 두루 살았던 자신의 과거가 어떤 철학으로 나타났는지 이야기했다. 이미 꽤 많은 저서로 독자를 찾았던 구마 겐고는 다시 한번 '건축'이라는 거창한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말하려 한다. 기하학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들을 통해.

<점, 선, 면>. 점은 무엇이고 선은 무엇이며 면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제 생각도 나지 않을 어린 날 수학 시간에 배웠던 간단한 정의, 또는 '건축'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를 '점', '선', '면'의 지극히 당연한 그림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시골 할머니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 물 호스는 인간에겐 '선'이지만 호스 위를 열심히 통과하고 있는 개미에겐 '선'만은 아니다. 개미는 호스 위에서 상, 하, 좌, 우의 방향 키를 모두 누를 수 있다. 심지어 동시에도. 누군가에게 '선'인 개념은 누군가에게는 되려 '면'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인가.

20세기는 회색의 걸쭉한 신기술로 쌓아올린 '볼륨'의 시대였다. 20세기 이전,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콘크리트가 발명되기 전의 수천 년은 점으로써, 선으로써, 그리고 면으로써 공간을 만들었던 것에 비하면 다분히 획일화되었고 다분히 폭력적으로 변한 시대였다. 20세기의 건축 기술조차 조악하고 부족하다고 말하는 구마 겐고는 그 이전 시대를 점, 선, 면으로 풀어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조적식', 즉 벽돌을 쌓아올리는 건축 방식은 '점'을 의미한다. 하나의 '점'으로 존재하는 재료들을 통해 면을 구성했고 그 안에 '보이드'를 만들었다. 고대를 예로 들자면 그리스의 몇몇 유명한 신전이나 오래된 절은 '선'의 특성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는 건축이다. 나무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와 잔가지,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면 그 자체로 '선'의 아름다운 표상인 나무는 1000년쯤을 버틴 목조 건축물 속에서 공간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선'으로서 존재한다. 현대인 또한 '선'으로 바라보는 그리스 신전의 거대한 돌기둥은 그 옛날엔 경이로움과 중간중간의 리듬감을 부여했을 것이다.

거리에 솟아있는 크고 작은 건축물은 현대인에게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인도의 척박한 땅을 건축으로써 사람이 찾는 곳으로 바꾸고, 머무는 공간을 통해 50년 후의 사회에 미묘한 영향을 미쳐야 하는 건축가들의 눈에는 그렇기에 점과 선과 면이 보였던 것이다. 특히나 '그' 4대 거장, 그러니까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의 전후기 작품에 대해 철학으로서도 사상으로서도 대담한 비판을 마지않는 구마 겐고에게 공간의 기초인 점, 선, 면은 남달랐을 것이다.

볼륨, 즉 어떠한 철학도 어떠한 목적도 어떠한 예술도 가미되지 않은 거대한 '덩어리'는 뉴욕이나 상하이의 마천루를 가능케 했다. 늘어나는 주거와 사무공간 수요, 높아지는 지대, 그리고 '높이'로써 국가의 '높이'를 자랑하고자 했던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축을 인류의 과학과 문화의 복합체로 바라볼 때, 켜켜이 쌓아올린 점에서 몇몇의 점을 빼 선을 구축하고, 선과 선 사이의 무언가로 면을 창조했던 그 옛날과 비교하여 볼륨의 시대는 폭력적이었다. 구마 겐고는 근현대 건축의 상징물을 날카로운 언어로 비판하며 창의성의 상징이었던 인물마저 시대의 전유물이 된 이유를 설명하고, 그들이 다시 비로소 '건축'으로 돌아온 일화를 소개한다.

구마 겐고는 '돌 미술관'을 만들 때 돌이라는 재료로 공기가 통하는 창인 '루버'를 만들었다. 아마 현대의 미술관이라면 모든 틈새를 단단히 틀어막고 현대식 장비로 공기와 햇빛을 조절했으리라. 돌이 만든 '선' 사이로 마음대로 드나드는 바람과 물을 의도한 것은 볼륨의 시대에 대한 반항이었다. '점, 선, 면'이라는 고민이 필요한 개념들은 뒤로 젖혀둔 채 콘크리트로 공간을 닫고 그 속을 완연한 인공의 생태계로 만든 것. 인간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다분히 신적이면서도 결국엔 인간다운 발상을 비판한 것이다. 828m 높이의 '부르즈 칼리파'를 중심으로 한 두바이의 인공도시, 하늘을 가리는 뉴욕의 마천루를 보고 사람들은 '압도' 당한다. 그러나 어떠한 영감을 느끼는 못한다. 자연을 찍어 누르고 인간의 힘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 점과 선과 면으로서 조화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건축'은 되려 어렵다. 지난 150년 동안 행하지 않았던 어려운 이야기, 그러나 기하의 기초로부터 출발하는 공간과 건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만이 인간만의 고유한 감흥을 이끌 것이다.

가장 인간다운 건축 철학, <점·선·면>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안그라픽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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