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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년 시절을 가득 채웠던 기억 중 하나는 얼굴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일이었다. 버스가 하루에 10대도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에 염소 냄새 가득한 실내 수영장 같은 건 사치였고 온 동네 친구들이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4월부터 쌀쌀해지는 9월까지는 너 나 할 것 없이 물가를 찾았다. 돌이켜보면 온갖 더러운 것들이 둥둥 떠나니는 강물에서 멱을 감는 것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시원한 감촉과 온몸을 감싸는 편안한 유체의 흐름은 아마 태곳적부터 시작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원시의 따뜻하고 걸쭉한 바다에서 기원했다. 오늘날도 해양 생물이었던 때의 흔적은 인체 곳곳에 남아있으며, 현대 인류보다 물과 친했던 과거의 조상들에게선 그 특징이 더욱 극명하다. 비록 인간이나 침팬지 등 유인원은 이제 태어나자마자 헤엄을 치지는 못하지만 물로 향하고픈 본능은 영원토록 남아있다. 뭇사람들이 계곡이든 바다든 시원한 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지 않는가. 어쩌면 스스로의 어머니와도 같은 '바다', 즉 '물'로 돌아가고픈 DNA가 수십만 년의 역사 깊숙이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영의 이유>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물속에서 단 5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자 동시에 물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아이러니한 존재 '인류'와 '물'의 기나긴 역사를 탐구하는 책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올림픽 덕분에 '수영'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졌었다. 남자 수영에서는 펠프스를 이을 차세대 수영 황제가 등장하는 듯했고 실로 오랜만에 우리나라 수영에서도 기대주가 등장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수영이라는 종목에 대한 관심은 확연히 사그라들었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궁금하다. 물속에서 첨벙첨벙 헤엄치는 인류의 역사에 대해.
물은 한때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다. 의학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 사람들은 따뜻한 물이나 바닷물에 알몸으로 뛰어들었다! 그 근거는 유사과학에 가까웠지만 위약 효과 덕분이었는지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하루 여덟 잔 물 섭취 권장도 바로 그때 생긴 것이었다. 재미난 것은 오늘날은 '과학'의 힘을 빌려 물을 진정한 '약'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불어난 체중으로 걷는 것조차 무리인 사람들은 물속에서 느릿느릿, 구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신체 활동을 계속한다. 인공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사고로 빠져버린 다리 근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이제 물은 진짜 치료제인 셈이다.
육상 동물보다 해양 동물에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선원 전부를 집어삼킨 시커먼 파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주로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출몰한다. 그곳에는 심지어 살아있는, 정확히는 살아남은 '아쿠아맨'의 이야기를 30년 넘도록 추앙하기도 한다. 물과 친숙한 인류는 고대로 가면 더 많이 알아볼 수 있다. 역사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개무덤이 조성되려면 강가에 있는 조개를 줍기만 해서는 쉽지 않다. 거대한 호수의 한 가운데에 날카로운 도구로 만든 사냥도구가 침전해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조상들은 물속 깊이 잠수하여 조개를 채취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오늘날 인류보다 몇 배는 더 긴 호흡으로 물속에 뛰어든 존재. 그들 중에는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있었다. 살기 위해서든, 유희를 위해서든, 본능에 이끌려서든 물로 뛰어든 인류들. 우리는 라스코 벽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역사를 지닌 고대 벽화 속에서 개구리헤엄을 치는 인류의 모습을 통해 옛날을 회상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LUCA가 바다에서 기원했음은 물론 현생 인류 또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물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난다. 물은 분명 인류에게 본원적인 친숙함을 전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나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다른 동물들이 태어나자마자 수영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유인원은 수영을 배워야 한다. 천상 육상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점차 물은 인류와 멀어지고 있다. 드문드문 경험하는 물의 경험이 행복한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본원적으로 물을 동경하지만 물이 두렵고, 물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수영의 이유'는 인류와 물의 끈끈한 역사를 통해 육상 위의 해양 생물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게 인류는 다시 한번 새파란 바닷속에 뛰어든 것처럼 청량감을 전하는 '물'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땅 위를 걷는 해양 생물, <수영의 이유>였습니다.
* 본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 자격으로 김영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