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사람이 먼저 되라는 어른들의 말씀에서 뜻하는 인격과 교양을 갖춘 참된 인간만이 어려운 목표인 것은 아니다. 여성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로부터 그 알량한 '사람'이라는 범주 안에 들기가 어려웠다. 여성이 사람이 되는 건 참으로 어려웠고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인류의 조상이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할 수만 년 전의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역사의 산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성 중심의 기득권은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견고히 유지되었다. 20세기 이르러서도 자유의 상징인 미국에서조차 여성의 정치 참여는 제한됐고 남녀 간의 임금 차별에 대한 대대적인 법 개정은 2009년에야 이루어졌다. 같은 '사람'을 1급과 2급으로 분류하는 '의문스러운 기준'인 '인종'처럼 '성별' 또한 사회를 살아가는 동등한 구성원을 낙인찍는 차별의 꼬리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셀마에서의 대행진처럼, 위대한 지도자이자 목회자의 선언처럼 투쟁적인 이정표가 있어야만 '성별'은 그저 '사람'의 특성 중 하나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인가.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수많은 역사가 그러했듯,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차별에 맞서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차별이라는 악명이 점차 어둠의 장막을 거두는 이유는 차별에 거세게 저항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악명 높은 RDB, 미국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으로 몇 명이 적절하겠냐는 물음에 '아홉 명(모두)'이라는 충격적인 답변으로 유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과 세계의 성 평등 역사에 숱한 기여를 '사람' 중 한 명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던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법적 평등권 확보에 애썼고 여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제기했다. 남성과 여성이 특정한 '편견'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성 평등으로 가는 사회적 발걸음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법률과 정부에 맞섰고 숱하게 이겨냈다. 또한 숱하게 패배했다. 그녀의 법률적 판단이 더 큰 조직과 관습에 의해 거부되었던 순간도 세상은 바뀌었다.

19년 동안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았던 여성에 대한 케이스는 결국 '관습'의 유지였다. 허나 2년 후 긴즈버그와 릴리 레드베터는 임금 평등에 대한 새로운 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제껏 습관처럼 이어져왔던 잘못된 체계에 대한 의문은 사회의 움직임을 이끌었고 결국 거대한 변화로 귀결된 것이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는 안타깝게도 바로 1년 전 세상을 떠난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위대한 법학자, 여성 운동가였던 긴즈버그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외침을 담아낸 책이다. 그녀가 변호사로서, 대법관으로서, 법학자로서 만들어낸 법률 케이스를 바탕으로 '여성차별', '성 평등', '임신 출산의 자유', '참정권' 등 오늘날 인류의 중요한 기치를 논한다.

긴즈버그는 스스로가 법률의 수호자이면서 법률의 파괴자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과거의 구시대적인 문화와 관습, 사상을 담고 있는 법률은 변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견고하고 공정한 틀이 되어야만 하는 법체계의 특성상 쉽게 모습을 바꿀 수 없다. 법률에 근거하여 법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대법관이라면 마찬가지로 쉽게 사상을 바꿀 수 없다. 긴즈버그는 딱딱하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신분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법'을 위해 투신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정부, 거대 기업, 기득권을 향한 거침없는 투쟁은 그녀의 케이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특정한 이야기로 귀결된 케이스를 적절히 해석해 준 해설자 덕분에 독자들은 법과 사상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고착화된 세상에 굴복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을 터다. 그럼에도 긴즈버그는 '사람'을 위해 달렸다. 남성과 여성, 각각의 성별에 대한 사회의 오래된 편견을 사람들이 벗어던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법조문에 '사람'이라는 올바른 가치가 새겨질 수 있도록 달렸다. 아주 오래된 사고방식을 바꾸려는 케이스 속에는 긴즈버그의 간절함이 묻어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할 것이다. 긴즈버그가 평생 동안 되찾고자 노력했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사람,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람.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였습니다.

* 본 리뷰는 블랙피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