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박문호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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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 연구의 최대 화두는 기계가 인간의 의식 체계와 비슷한 처리 및 사고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이다. 당시에는 괴짜로 불렸던 몇몇 과학자들의 상상 속에서, 급진적인 소설가의 글 속에서, 심지어는 일부 기록 상의 연구 속에서 이미 100년 전부터 시작된 인공지능 연구는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인간계 최강 이세돌을 4 대 1로 격파한 '알파고 리(Lee)'는 혁명 그 자체였다. 체스보다 몇 배는 복잡하여 인간의 입장에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수가 있는 바둑 대결에서 인간의 피조물이 창조자를 이긴 것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후, '알파고 리'는 알파고 제로에 참패했다. 100번의 대국에서 알파고 리가 승리를 거둔 판은 없었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냐 반문할 수 있지만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약한(weak) 인공지능'일뿐이다.

알파고의 출현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개막했다. 그 이전의 50년보다 최근의 5년이 더욱 격동적인 인공지능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상태이다. 세계가 모두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있고 으레 인공지능은 가까운 미래에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도의 수준으로 인간과 조우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소수의 의견이지만, 생각의 전환점을 불러일으킨 하나의 문장이 새롭다. '인공지능은 결코 인류의 기대만큼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저명한 뇌인지 과학자들과 심리학자, 철학자, 로봇공학자들은 왜 인공지능의 발전에 의문을 제기한 것일까?

인간의 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구현한 '지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능'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의미할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그저 단순한 감각의 수용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상황 판단'을 위해 인간의 피조물은 어쩌면 수억 줄에 달하는 코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인간을 돕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인공지능'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것. 현재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 인공지능의 다층적인 의미를 정의하는 것조차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인간은 과연 신과 같이 새로운 '지성'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보다, 45억 년 역사의 지구는 이토록 놀라운 의식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느끼고 아는 존재>는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진취적이며, 또한 동시에 독자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편인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그간 숱하게 들어본 독자의 피드백을 양분 삼아 펼쳐낸 신작이다. '데카르트의 오류', '스피노자의 뇌'를 통해 반드시 이해하고 싶지만 보통의 노력으로는 단 몇 개의 문장조차 완벽히 해석해낼 수 없었던 난해함을 선보였던 저자는 인간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연구가 피상적으로 남겨지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여전히 쉽지 않고 관념적이지만, 감각을 느끼고 마음속 이미지를 지도화하며, '앎'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전작과 비교하여 상당히 짧은 호흡으로 간결하게 끊어냈기에 우리의 '의식' 속에서 '의식'은 조금이나마 체계를 잡아감을 느낄 수 있다.

지능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행위들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때문에 돌고래에게도 지능은 있다. (심지어 동물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수십억 년 전부터 존재해온 박테리아에게도 지능은 있다. 그러나 지능이 있다고 해서 '의식'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본능과 순간적인 감각에 의존하여 마주한 장애물이나 위험을 헤쳐간다고 해서 세상을 다차원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 또한 수십만 년 전에는 이와 같은 수준의 저차원적인 지능에서 출발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눈과 귀, 코, 피부를 통해 세상의 자극들을 감각하며 감각이 전하는 이미지를 표상으로서 마음에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수만 개에 달하는 이미지를 지도화하여 특정한 판단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인간은 그렇게 점차 '느끼고', '아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자는 고등한 수준으로 이미지 패턴을 처리하는 것, 곧 지식이 의식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기대했던 것처럼 거창하지도, 상상했던 것처럼 간결하지도 않은 결론으로 다다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의식의 세계가 완성되기 위한 기억, 지식, 이미지, 감각, 마음 등의 정류장을 차근차근 거치게 된다. 이내 놀라운 생각에 잠긴다. 과연 인간이 이토록 정교하고 심오한 하나의 체계를 차가운 기계 심장에 불어넣을 수 있을까. 수십만 년의 시간은 인간에게 어떻게 '의식'을 심어준 것일까.

피상적이고 넓은 지식은 점차 방대해진다. 인류의 '앎'은 매 순간 그랬듯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식'에 대한 '앎'은 부족하다. 인공지능과 같은 어려운 주제이자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피상적인 지식에 깊이를 더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그 진정한 '앎'을 알게 되는 순간 인류의 역사는 다시 한번 뒤바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알아야 할 시간, <느끼고 아는 존재>였습니다.

* 본 리뷰는 흐름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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