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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생물 콘서트 - 바다 깊은 곳에서 펄떡이는 생명의 노래를 듣다
프라우케 바구쉐 지음, 배진아 옮김, 김종성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눈은 하늘로 향해 있다. 스페이스 X와 블루 오리진은 화성 식민지 건설을 천명하며 광활한 우주를 조금씩 손아귀에 넣겠다 말한다. 냉전 시대의 화려한 인공위성 전쟁을 뒤로한 채 수십 년 동안 답보 상태였던 우주 개발은 민간의 자본을 만나 다시 한번 거세게 불타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의 진정한 미개척지는 단 한 곳이다. 사실 우리 곁에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익숙한 존재이자 대상. 인류의 머리 위가 아닌 발밑의 공간, '바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어를 꼽아보라는 말처럼, 지구를 지구답게 만드는 단어를 찾아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아마 '바다'라 말하는 학자들이 많을 것이다. 지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지구상의 물 중 97%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생명의 기원이자 지구의 수호자와 같은 곳이다. 수만여 종의 생물을 품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며,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거대한 생명 유지 장치이다. 이토록 그 역할이 중대한 바다이지만 인류는 바다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4분의 1을 만드는 해양 미생물군, 바다 면적의 5%도 채 되지 않지만 해양 생물종의 4분의 1이 살아가는 산호초, 극악무도한 펭귄이 살아가는 남극, 그리고 인류가 망쳐버린 '블루 오션'까지 바다에는 경이로울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요한 듯 요동치는 바다가 들려주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넋을 놓고 빠져들 만한 것들이었다.


<바다 생물 콘서트>는 인류의 마지막 미개척지 바다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정갈하게 풀어낸 책이다. 바다를 가진 것이 지구에 어떤 의미인지를 생물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과학적 원리에 따라 흥미롭게 전개한다. 몰디브에 오래도록 정착하여 인근의 해안을 관찰하고 사람들에게 해양 생물종을 소개하며 살아간 해양학자인 저자는 바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바다의 신비를 모두 꿰찬 인물 같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수준의 기후학 지식이나 생태계학을 서술한 저자의 바다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드넓은 바다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누런 모래 빛의 사막보다도 황량하고 삭막한 공간이다. 실제로 많은 해양 생물종이 해안, 해수면을 접촉하지 않고 살아간다. 오직 물만이 존재하는 그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고요할 것 같지만 바다는 생각보다 시끄럽고 맹렬한 곳이다. 짝짓기를 앞둔 물고기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생물종은 '쉬익쉬익', '둥둥' 등 온갖 소리를 내며 바다를 떠들썩 하게 만든다. 우리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가장 많은 생물종이 살아가는 수심 200m 이하의 바다는 상어, 거북, 플랑크톤, 해파리 등 온갖 생물이 가득하다. 그곳을 지나 1000m를 넘어 4000m 이하의 심해저로 진입하면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별빛 덕분에 완전한 어둠이 아닌 우주보다도 외로운 이 심연에도 기막히게 적응하여 살아가는 생물이 존재한다. 뜨거운 물을 내뿜는 열수공을 따라 조개류나 관처럼 생긴 생물종이 서식하고 한대성 바다에 살아가는 산호 또한 얼굴을 들이민다.
플랑크톤과 같은 극히 미세한 생명체부터 산호와 같은 군락, 거대한 고래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드넓은 바다를 다양한 주제로 엮어냈다. 덕분에 독자들은 해양학자와 함께 무거운 스노클링 장비를 메고 투명한 바다를 함께 유영하는 듯한 감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실로, 수작이라 말하고 싶다. 바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나 해양 생물의 짝짓기 등 흥미로운 주제 구성은 물론이거니와 깔끔한 글솜씨 또한 갖춘 책이다. 바다의 크기만큼이나 방대한 바다 이야기를 마찬가지로 방대하게 담고 있지만 결코 훌쩍 넘기고 싶은 구절이 없다. 하나하나 곱씹으며 바다의 푸르름을 한껏 흡수하고 싶다. 그러나, 많은 인류의 걱정처럼 바다는 더 이상 푸르른 공간이 아니다. 인류의 오만은 바다를 병들게 만들었다. 저자는 바다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바다를 사랑하는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지만 녹록지 않다. 우리 모두의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다는 실로 생물 다양성의 콘서트가 매일 펼쳐지는 경이로운 공간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해양학자의 바다 유영이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바다를 영원한 푸르름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를 지구답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 바다. <해양 생물 콘서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흐름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