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 -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 괴로운 신분
조선희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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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상식이 상식이 된 시대, 비이성이 이성이 된 시대,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 2021년의 빛나는 대한민국을 가장 잘 수식하는 말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손에 쥐었건만 사람들의 미래에 희망은 없다. 얼마 전에는 90년대 이후 30년 넘게 갈망했던 선진국 칭호를 얻었건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노력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공식이 있어야 사람은 힘차게 움직일 수 있다. 설령 오늘과 내일의 삶이 조금 고되어도 이겨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5년, 10년, 20년 전에 비해서 희망과 용기, 미래 따위의 밝은 단어를 진정으로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늘어났을까 줄어들었을까. 우리의 삶에 직결되는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복지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희망보다는 절망, 긍정보다는 부정을 쉬이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것들은 과연 앞으로도 상식으로 남을 수 있는 걸까.

예순을 넘긴 작가가 지난 수십 년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숱한 변화를 낱낱이 고발한다. 저널리스트에서 작가로 한평생 폭넓고 사료 깊은 생각을 글로 옮겨왔던 경험은 되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전하기 적당한 양분이 되었다. 하나의 분야를 깊은 우물처럼 파지는 않지만 묘하게 연결되는 각각의 '모순'들은 독자들에게 복합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 부동산 불패 정책부터 신자유주의, 친일파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묵직한 키워드를 하나하나 매끄럽게 연결한 저자의 이야기는 상당한 흡입력을 지닌다.

<상식의 재구성>은 상식이어선 안 되었던 상식, 상식이 되어야만 했던 비상식을 통해 2021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다양한 언론사와 잡지사 등에서 오랜 기자 생활을 경험한 덕분에 저자는 연결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붙이는 내러티브의 묘미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자칫 진부함이나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에서조차 경험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서사 구조를 통해 한 번쯤 과거의 상식과 비상식이 진정으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맞았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7가지 주제로 구성된 저자의 일갈은 특히 미디어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다. 스스로가 매스 미디어의 한 부분으로 삶을 살아왔기에 기업, 정부, 관료, 자본이 언론과 유착하여 세계를 휘두르는 역학 관계를 무척 잘 알고 있다. 5년, 10년의 나라 살림을 결정하는 주요 경제, 사회 정책이나 거대 기업의 성장, 정치 세력의 패권 교체 등 많은 서사가 결국 펜 끝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유사 언론이라 볼 수 있는 엉터리 매체를 포함하여 2만여 개의 언론이 쏟아내는 '소음'의 홍수 속에서 한국인은 더욱 혼란스럽다. 그 옛날의 미디어와 오늘의 미디어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역설하며 한국인의 고초를 저자는 제법 당당히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다. 분명 하나하나 어려운 주제일 수 있는 것들이다. 정치, 경제, 일본과의 관계, 미디어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지면이 충분치 않아 하나의 주제를 박사 논문 수준의 그것처럼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날카롭게 냉소적인 화두를. 그래서 더욱 찾아보고 싶다. 더욱 공부하고 싶다. 더욱 불만을 품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예순의 지성인이 건네는 희망이 아닐까. 우리 시대의 문제를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맞서 싸울 의지를 심어주는 것, 투쟁의 불씨를 움 틔우는 바로 그 희망 말이다.

상식이었어야 했던 비상식, 이성이었어야 했던 비이성, <상식의 재구성>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한빛비즈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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