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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쓰레기가 온다 - 지속 가능한 평화적 우주 활동을 위한 안내서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요한 우주의 경이로움과 공포를 예술적으로 표현하여 극찬을 받았던 영화 <그래비티>. 블루 마블을 바라보며 임무에 집중하고 있던 주인공 라이언(산드라 블록)은 초당 수 km로 날아오는 우주 쓰레기에 휘말려 홀로 우주를 유영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1mm 크기의 나사 하나가 우주 정거장을 박살낼 수도 있는 경이로운 단위의 세계에서 우주 쓰레기는 이제 영화 속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인류가 쏘아올린 인공위성의 수는 1만 개가 훌쩍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임무 수행 기간이 끝나 저궤도에 방치되어 있거나, 추락하여 대기권에서 산화했거나, 인공위성의 무덤인 고궤도에 잔뜩 쌓여 있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 몇 백 kg짜리 인공위성 1만개가 대수냐 싶겠지만 현재 천문학자들은 인공위성이 만드는 잔상 때문에 천체 관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류 역사 상 최초로 인류가 쏘아올린 인공물체 때문에 심연의 우주에서 날아오는 천체의 빛이 간섭 받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때 사용된 로켓은 매 발사마다 페어링 같은 작은 금속 부품을 우주에 방출한다. 우주에 한번 방출된 인공 물체는 아무도 수거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겨난 우주 쓰레기들은 서로 충돌하여 다시 엄청난 수의 우주 쓰레기를 만들고 인류의 밤하늘을 과학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위협하고 있다.


<우주 쓰레기가 온다>는 쏟아지는 쓰레기로 고통을 받는 것은 지구의 표면, 즉 지상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과감하고 필연적인 책이다.
그저 푸르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우리의 하늘은 이제 더 이상 고요한 곳이 아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는 우주개발 경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약 60년 전부터 20~30년 동안 인류는 엄청난 수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 인류 최초의 위성인 '동반자', 스푸트니크 1호에서 떨어져 나온 최초의 우주 쓰레기 이후로 3만 7천 여개의 우주 쓰레기가 지구 궤도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떠돌고 있고 여전히 2만 개가 넘는 총알이 우주 진출을 위협하고 있다.
우주 쓰레기는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인류의 문제가 되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거리에서 날아오는 천체의 빛은 사실 희미하다. 뛰어난 고성능의 우주 망원경으로 겨우 잡아내는 수준이다. 모든 천체 관측을 허블 망원경 등을 통해서 진행할 수는 없기에 사람 키만한 렌즈를 가지고 있는 천문대에서는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우주 쓰레기가 주욱주욱 그어놓은 잔상과 같은 선을 찍어낸다. 밤하늘을 관찰하는 것에 많은 의지를 하고 있는 천체물리학이 근본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의 간섭 현상은 천체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과학계의 고민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발사한 인공위성과 우주정거장이 지구로 추락한다는 기사가 한동안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뉴욕, 상하이, 파리, 서울까지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중국발 우주 쓰레기의 추락 예상 지점으로 예측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대부분의 우주 쓰레기는 대기권에 진입하며 산화하지만 덩치가 큰 것들은 실제로 지표에 추락할 수 있다. 불과 5~6년 전 러시아에 인공 위성이 추락한 것처럼 인류는 우주 쓰레기가 언제든 추락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다수의 국가들은 우주 쓰레기를 감시하는 기관을 만들어 수만 개에 달하는 우주 쓰레기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다. 문제는 실제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움직임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쓰레기를 미사일이나 레이저 등으로 요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오늘날 필수적인 국가 인프라가 되었다.
인류의 우주 진출은 더욱더 가속화 될 것이다. 이제 인공위성이나 로켓은 더 이상 정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는 회수가 가능한 로켓 개발이 열을 올리고 있고 스타링크 시스템 구축을 위해 엄청난 수의 인공 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 냉전의 종식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우주 개발이 민간의 영역에 접어들면서 밤하늘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스페이스 X, 블루오리진 등의 민간 기업이 가세한 우주 산업은 막대한 양의 우주 쓰레기를 생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현재의 논의 상태에서 우주 쓰레기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화성 식민지 건설까지 꿈꾸고 있는 인류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주 쓰레기 때문에 우주 진출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어 우주 산업이 퇴보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무분별하게 쏘아올린 우리의 희망이, 절망이 될 수 있는 상황을 강조하며 '우주 쓰레기'가 지니는 인류공통의 의의에 대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광활한 우주가 오로지 인류의 것인 것마냥 안일하게 생각하며 수만 개의 인공물을 쏘아올릴 때부터 저자는 우주 쓰레기를 연구해 왔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류는 그동안 깊은 고민 없이 실행했던 '공유지의 비극'을 비로소 체험하는 중이다. 인류의 마지막 미 개척지 우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면 스스로가 어지럽힌 우주를 정리해야 한다.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지구를 휘감고 있는 우주 쓰레기의 띠를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확실한 대안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넷플릭스 전용으로 개봉한 <승리호>처럼 지구 궤도의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전담반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묘사된 우주 쓰레기를 실제로 상상해보면 무척이나 절망적이다. 나사 하나만으로 우주선을 폭발시킬 수도 있는 우주 속에 집채만한 쓰레기들이 날아다닌다면 우주 비행사들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화성을 넘어 심연의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늘부터 조금씩 우주를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숨 막힐 정도의 고요, 그것이 우주가 지닌 본원적인 아름다움이기에.
밤하늘을 덮고 있는 3만 7천 개의 파편, <우주 쓰레기가 온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갈매나무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