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 성공과 몰락의 변곡점에서 승리하는 단 하나의 원칙
앤드류 그로브 지음, 유정식 옮김 / 부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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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프에서 기울기가 변하는 바로 그 점, 변곡점을 지나는 순간 경영 환경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하기 시작하다. 스마트폰을 통해 모두가 손안에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순간이 그러했고, 2만 달러짜리 값비싼 계산용 컴퓨터가 2천 달러면 구할 수 있는 퍼스널 컴퓨터가 되었을 때가 그러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기업의 주식이 종잇조각이 되거나 작은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되는 날카로운 변화가 생기는 바로 그 점이 변곡점이다.

이른바 '전략적 변곡점'이라 불리는 시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이라는 유기체의 운명을 뒤바뀐다. 실로 많은 제국들이 20~30년에 걸친 장기 집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스러져 갔다. 지구 생태계만큼이나 흥미로운 경영 환경 속에서는 공룡이 죽어간 자리를 금세 채우는 새로운 왕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확히는 먼 미래를 내다본 침략자들이 '메가 경쟁'의 시장에서 곡선의 기울기를 변화시킨다.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기존의 거대 세력은 발 빠르게 산업을 읽어야 하고 도전자 또한 거센 혁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전략적 변곡점의 무서운 흐름이다.

문제는 주변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리더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영업 직군의 중간 관리자와 같이 시장에 보다 밀접한 구성원들은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챈다. 경쟁자는 어느새 턱 밑까지 쫓아와 있고 소비자는 자신들을 외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더들은 다른 중대한 사안이 많아서인지 곡선이 변하는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곤 외친다. '아까부터 길을 잃은 것 같은데..'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인텔 제국의 아버지와도 같은 앤드루 그로브의 1988년 작(作)이다. 메모리칩 생산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주요 산업군을 옮기며 취임 기간 동안 10배가 넘는 매출액 성장을 이뤄냈던 그는 실로 실리콘밸리를 가능케 한 장본인이었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 그리고 넥스트라는 흥미로운 막장 드라마를 지켜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상을 함께 하면서 인텔은 언제나 IT 기업의 심장이 되어왔다. 그 어떤 산업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IT 업계에서 스스로가 변곡점을 만들고, 누군가 만든 변곡점 뒤의 세상에 기민하게 적응하며 인텔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진격을 계속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뒤편에는 인텔이 있었듯, 인텔의 뒤에는 앤드루 그로브가 있었다.

인텔이 묘한 변곡점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5천억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던 긴박한 상황 때문이었다. 인텔의 주력 상품이었던 펜티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대량 생산 체계를 완성한 1994년, 경영진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또 한 번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 한 미디어에서 시작된 파동은 파문에 가까운 결과를 낳았다. '부동 소수점 장치'라는 칩 설계 상의 오류 때문에 펜티엄을 신뢰할 수 없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인텔은 이미 출하된 수백만 개의 칩을 회수하고 새로운 칩을 고객 개인에게 발송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인텔이 4억 7천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감당했다는 사실보다 흥미로운 점은, '부동 소수점 장치' 파동 이후 IT 업계에 대한 언론과 소비자들의 검열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시장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앤드루 그로브는 이렇게 값비싼 수업료를 내지 않고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경영자는 변화하는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수만 명에 달하는 구성원들을 배에서 떨어지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CEO가 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유이다. 그러나 선장실이 수많은 중간 관리자와 중역, 거짓된 소음이라는 두꺼운 외벽에 둘러싸인 덕분에 CEO는 정보를 획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상반기 실적이 어떻고 하반기 동향이 어떻니 하는 누구나 아는 정보 말고 시장과 거친 경쟁자들의 시커먼 속내와 같은 진짜 정보를 말이다.

때문에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은 거의 병적으로 예민해야 한다. 편집광이라 일컫는 극단적인 수준의 경계 상태에서도 리더는 쉽게 길을 잃고 만다. 걷고 있는 길이 제대로 된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동료들의 외침에도 아집과 자만심 등으로 길을 잃고 나서야 잘못을 인정하는 리더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변곡점의 순간과 변곡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기업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한다.

가히 경영전략서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다. 1988년에 출간된 책이 90년대 중반 개정을 거쳐, 2021년이 되어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책을 집필하던 그 순간에도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 미래의 변곡점을 만드리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전략적 변곡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경계했다. 많은 것들이 실제의 것이 되었다. 어떠한 세부적인 기술의 흥망을 예측하는 것이 아닌, 기업 생태를 관통하는 진리와도 같은 '전략적 변곡점'을 통해 30년 넘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클래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갈 때에도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미래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흐름이 어떠한지 기민하게 살피고 새롭게 펼쳐진 패러다임에 휩쓸리지 않도록 '편집광'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자신이 속한 세상을 정확히 꿰뚫는 것, 편집광만이 가능하고, 편집광만이 살아남으리라.

전략적 변곡점을 느끼고, 돌파하라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부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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