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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과학 - 최첨단 과학으로 밝혀낸 유대의 기원과 진화, 그 놀라운 힘
리디아 덴워스 지음, 안기순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이 바빠지면 가장 먼저 외면당하는 것이 우정의 영역이다. 친구와의 약속은 여러 핑계를 들어 교묘히 미뤄지고 사라진다. 가족이나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는 '우정'은 현대 사회에 들어 더욱 축소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진정한 우정이라 부를 수 있는 관계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고, 그마저도 먹고살기가 힘들어 피하게 된다. 호모 소시올로쿠스, '사회적 인간'임을 자처하는 인류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분명 소중하지만 '사피엔스'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비단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와의 관계가 아니어도 좋다.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이의 존재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군에게 상당한 심적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친구가, 동료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얼룩말, 물소와 같은 피포식 동물은 맹수 앞에서 두려움을 덜 느낀다. 사람들도 친구와 함께 괴짜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을 더욱 잘 '저지른다'. 괜한 용기일 수 있지만 그만큼 타인은 하나의 객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가족이나 연인은 조금 더 특별하다. 친구는 대신 훨씬 다양한 집단으로 분포한다.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낼 수 있고 각각의 친구와 다양한 방식으로 화학작용을 만들 수 있다. 결국 남는 건 친구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그저 지나가는 말은 아닌 이유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우정의 과학>은 사랑도 아니기에 무언가 강렬하지 않고, 과학으로 다루기엔 철학의 영역에서만 정의되어 왔던 '우정'을 뇌과학과 심리학 등 학문적 영역에서 진중하게 풀어낸 책이다. 우정을 과학으로 이야기할 것이 있겠냐는 많은 사람들의 냉소를 뒤로하고 저자는 상당히 과감한 과학적 시도를 꺼낸 것이다.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서 시작되는 아이의 감정 분화와 원숭이, 개미, 그리고 인간 집단을 동시에 관찰하며 제시한 동적 생명체의 본성 등을 통해 흥미로운 관점을 다수 제시한다.
인간관계는 현대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먹고사는 문제도 스트레스이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대부분 인간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생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군상의 타인은 개인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든다. 그만큼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당한 동적 영향력을 받는다. 부정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 것도 자명하다.
때문에 관계성이 부족하면 사람은 병든다. 외로움이 사람을 병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강력하고 나쁜 영향을 미치며, 그중에는 관계의 단절과 소외감이 포함된다.
책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스트레스 등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제 우정도 뇌과학으로 접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1990년대 뇌 영상 촬영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연구자들은 우정이 안정감, 용기, 스트레스 해소, 활력 등의 힘을 제공함을 입증할 수 있었다.
선호하는 우정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상당히 어릴 때부터 진행된다. 유아기 자녀가 부모와 느끼는 애착 관계에서 뇌는 타인과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다. 중학생 무렵이 되어서는 소위 부끄러운 일들, 일테면 거절당하거나 주목받는 행위 등을 통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보다 분명히 체험한다. 이때의 경험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치며 우정이라는 무형의 관계가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인간이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임을 역설한다. 미국의 경우 20년 내에 어린아이의 숫자보다 노년층 인구가 더 많아지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비단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노년층 인구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인생을 모두 통달했을 것으로 보이는 노년층조차도 수십 년을 함께 하던 친구의 죽음 앞에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관계의 단절은 별다른 삶의 변화 없이도 사람을 '자연적인' 죽음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하물며 넘치는 에너지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역동적인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보다 젊은 세대들은 '우정'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우정이 사라지는 세상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사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다. 결국 인간은 우정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진짜 친구'와의 우정만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타인과의 따뜻한 공존을 의미하는 우정은 인류가 획득한 가장 오래된 칭호인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예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이다.
호모 소시올로쿠스의 관계성, <우정의 과학>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흐름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