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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
김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를 발전시키는 과학에도 경중이 있을까. 전자 통신 기술이나 태양광, 에너지 같은 분야는 대기업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같은 과학 분야임에도 등한시되는 분야는 존재한다. 삼림학이나 고생물학 등은 정부의 지원도 부족하고 사회적인 인식이 탐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류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분야에 아까운 세금이 쓰이고 있다는 볼멘소리까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인류 발전에 필요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는 정말 있는 걸까.
기생충을 연구한다고 하면 양자역학을 연구한다고 하는 것에 비해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기생충이 의외로 인류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003년 인간의 게놈 지도가 밝혀지기까지 이름도 특이한 '예쁜꼬마선충'의 역할이 컸다. 인간의 유전체 정보에 비해 30분의 1 정도의 수준을 지닌 예쁜꼬마선충은 사람이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완전히 해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선충 주제에 위대한 인간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실험'되는' 주체가 된 것은 처음이었지만 덕분에 몇 조 원에 달하는 연구비가 유전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쓸모없는 것들이 세상을 구할거야>는 어쩌다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 또다시 어쩌다 유전학 연구라는 고된 길에 들어선 젊고 도발적인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인류가 존재했던 시간의 대부분 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예쁜꼬마선충이 인류 유전학 연구에 기여했던 이야기를 무척이나 정성스레 풀어놓는 모습에서 저자에게 과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소위 기생충이라 불리는 선형동물이나, 미생물, 실험체로 쓰이는 동물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었다면 자연의 섭리에 의해 탄생하고 소멸할 운명이었다. 더 오래, 더 건강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법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같은 인간에게 실험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했고 결국 '쓸모없는 것'들이 인간을 구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현실에도 무척이나 아쉬움과 괴로움을 느끼며 생명의 소중함과 나아가 과학의 의미를 깊이 통찰한다.
책은 유전학을 위해 작은 생명체와 함께 하며 느끼는 과학적 깨달음과 인간적 감상을 함께 전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생명체를 희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저자 또한 마찬가지로 실험용 쥐를 수도 없이 희생시켰다. 이제 무감각해질 때쯤 되었지만 여전히 저자는 인간을 위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희생을 숭고하게 여기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과학자로서의 이성과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기에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 다르다. 그저 연구 실적에만 집중하며 비윤리적인 실험을 일삼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여전히 인간다움을 강조한다. 인간이 있고 과학이 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과학적 진보는 인간에게 이로운 작용을 할 수 있다.
가슴 따뜻한 과학자의 고뇌하는 생각노트를 읽은 기분이다. 특히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다 보니 저자는 오늘도 과학과 인간다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던지고 있다. 어려운 갈등 속에서 따뜻함을 잃지 않기에 저자의 시각은 새로운 자극을 준다. 성장과 발전만이 사회 분위기를 압도하는 지금,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구한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웅진지식하우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