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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작전 - Golden Time ㅣ EBS 과학 교양 시리즈 비욘드
이한결 지음 / EBS BOOKS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비록 실상은 난폭하지만) 귀엽고 하얀 북극곰이 있다. 포식 행위를 위해 하얀 털로 몸을 숨긴 채 순식간에 바다표범 등을 덮치는 이 거대한 육상동물이 홀로, 흙빛의 땅 위에 서 있는 사진이 자주 목격된다. 북극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가자. 남극은 평균적으로 2km에 달하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덮인 대륙이다. 북극보다도 혹독한 기후를 자랑하는 이 설원이 심상치 않다. 최근 한반도 면적에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 빙하층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따뜻해진 바닷물이 빙하의 하단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미 상당 부분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 북극해의 얼음은 바닷물이 언 것이기에 이미 그 부피와 무게를 포함하고 있어 해수면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남극의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해수면이 65m 상승한다. 뉴욕, 상하이, 서울 등 바다와 인접한 세계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인류가 현재 살아가는 대다수의 육지가 아쿠아리움으로 변한다. 고대 아틀란티스의 전설처럼 인간은 인어족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쌍둥이 빌딩이 탈취된 비행기 2대에 참담히 무너져 내린 후 미국은 대테러 독트린을 발표한다. 테러에 대한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100%로 간주하고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기후 위기는 인류사에 기록된 모든 테러보다 비참하고 거대한 피해를 유발할 것이다. 당장 내일이 그 심판의 날이 되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아, 5년 후, 또는 10년 후, 늦어도 20년 후에 수십억을 집 잃은 이재민으로 만들고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은 100%이다. 왜 세계는 근시안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인가. 테러, 금융 위기, 팬데믹, 외계와의 조우 등에 대해서는 각국 정상들이 시급한 회의체를 운영하면서 기후 변화에는 미온적인가. 인류는 정녕 자신이 있단 말인가?


<지상 최대의 작전>은 21세기의 첨단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중대한 사안, 인류 멸망 시나리오와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책을 역설하는 책이다. '기후 위기', '바이러스 X와의 조우', '식량', '우주적 존재의 위협' 등 개인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여 숨이 막히는 전 지구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인류는 분명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천연두가 유행하던 18세기 이전도 아니고, 스페인 독감이 발발한 1918년도 아닐진대 왕관을 쓴 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바이러스에 1억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와 저개발 국가 등에서는 수천만 명, 아니 수억 명의 실업자가 쏟아졌다. 국가 경제는 마비되었고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사지를 이식하고 이미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시대에 전염병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 멸망 시나리오의 탑 5 안에는 바이러스 X의 습격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히 '변화'라 불러서는 안 된다. '위기'이다. 명백한 위기. 지금껏 존재했던 다섯 번의 대멸종 가장 잔혹했던 고생대 페름기 대멸종은 해양 생물의 90% 이상을, 육상 생물의 70% 이상을 절멸시켰다. 어떻게? 육지의 온도는 60도가 넘었고 바다 표면의 온도는 40도가 넘었으니까. 흡사 원시 지구의 대기 환경과도 비슷했던 불바다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구가 자연적으로 뿜어낸 이산화탄소가 태양이 전달하는 에너지를 고스란히 묶어두는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 2천만 년에 걸쳐 진행된 일이었다는 점은 현재의 인류에게 더 큰 경고를 전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속도는 고생대 페름기 때의 그것과 비교하여 100배에서 1000배나 빠른 속도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050년이 된다면 인류는 지구가 선물하는, 또는 앙갚음하는 전 지구적인 기후 스크라이크를 맞을 것이다. 바다는 끓어오르고 도시에 80% 이상 몰린 인구는 살 곳을 잃게 된다. 지속 가능한 인류 사회는 종말을 맞는다.
지나치게 암울한 얘기만 늘어놓은 걸까. 조금은 그럴지도. 인류는 결국 필연적으로 인류가 스스로 자초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의해 중대한 위기를 맞는다는 얘기는 흥미로우나, 아쉽다. 책은 그에 맞는 세세한 대응책을 함께 제시한다.
<인구론>의 멜서스는 전혀 맞지 않은 예측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충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의 예측은 맞는 문장과 틀린 문장 모두 현대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인은 정말 빠르게 증가했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지구인의 숫자는 60억 명이라 분명히 배웠던 세대이다. 불과 20년 만에 세계 인구는 80억 명으로 기하급수적 성장세를 보였다. 농사를 짓거나 축산/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인류의 최우선적인 과제가 되지 않겠는가.
멜서스의 틀린 예측이 여기서 힘을 발휘한다. 선진 농법은 수직 농장이나 수상 농장 등의 신기원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싼 수도권의 부지를 사들여 커다란 창고를 짓고 10여 개 층으로 각종 채소를 키우는 틀을 꽂아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스마트 팜이 늘어나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수백 년 전부터 쌓인 물을 다루는 지혜를 적용하여 강 위에 부유하여 젖소를 키우는 거대한 우유 농장을 만들었다. 하물며 이러한 기술이 있을진데, 농업 생산력은 점점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농업의 미래는 현재 직면한 영양 불균형, 기아 문제, 가축 동물이 방출하는 막대한 탄소 발걸음 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응책이 될 것이다. 당연하게도 보다 지속가능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개개인의 노력부터 시작해야 함을 절실히 호소하고, 그에 맞게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마음껏 소개하고 있다. 초승달 모양으로 대양의 한 가운데 아름답게 들어선 섬 투발루. 투발루는 매년 1cm 가까이 차오르는 바닷물에 위협을 받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투발루의 해안에 방벽 시설 등을 설치하여 투발루를 보호할 대안을 모색 중이다. 이때 국토의 50% 이상이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맞서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방법에 일가견이 있는 네덜란드의 기술력을 응용해보면 어떨까. 수도인 암스테르담 또한 암스테르강 하구에 연약한 땅을 간척하여 만든 네덜란드는 점점 높아지는 해수면을 독(dock) 등의 기술을 이용해 통제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를 실제로 연결하겠다 제안하지 않았지만 투발루를 비롯한 다수의 섬나라나 해안에 인근한 도시는 해수면 상승에 대한 고민을 진중히 시작해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인류는 늘 답을 찾아왔다지만, 이번에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우려 섞인 탄식이 가득하지만 지금은 걱정보다 행동이 필요하다. <지상 최대의 작전>은 전 지구적 수준의 위기와 그에 맞서는 '작전'을 담아냈다. 당장 내일 벌어질 일이 아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지만, 책 속의 몇몇 위기는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인류는 글로벌 리더십을 규합하여 인류사에 길이 남을 작전을 시작해야 한다. 기후 변화, 바이러스 X, 소행성 충돌 등에 맞설, 지상 최대의 작전을.
지금은 인류 멸망 시대, <지상 최대의 작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EBS BOOKS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