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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첫걸음
그레임 개러드.제임스 버나드 머피 지음, 김세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토록 발달한 인류 문명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암담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려주었다. 전염병을 통제하지 못해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20세기가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했던 인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팬데믹이 알려준 인류의 민낯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였다.
200여 개의 국가가 연합한 국제 조직이 출범하여 전쟁, 세계금융위기, 대테러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대응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국가에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 각국의 '리더'들이 머리를 맞대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만 같았다. 지난 2019년 말,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리더들의 모습은 낯설었다. 감염 경로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였고 쏟아지는 실업자들에 대한 관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현명한 리더십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정치란 무엇일까. 대여섯 명 되는 작은 조직을 이끄는 수준의 리더가 아니라 복잡계의 끝판왕인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역량이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정치는 인간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그만큼 논란과 혼란, 탐욕과 욕망, 사건과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이었다. 수많은 정치가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했고 앎과 교양, 지혜의 수준이 오늘만큼에 이르지 못했던 과거의 선조들은 정치가들의 얕은 술수에 넘어가기도 했다. 반대로, 국가의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올바른 정치를 펼쳤던 위대한 사상가들 또한 존재했다. 인간의 역사가 늘 그러하듯, 정치 또한 수많은 선례와 반면교사가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의 리더들은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실수와 영웅담을 반복한다.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는 이토록 복잡한 리더의 '정치'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른 명의 현자들을 통해 바라본다. 저자들이 정의하는 정치의 모습은 다양했다. 국가의 행정을 이끄는 것부터 종교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정치가와 선지자, 사상가와 연구자 등 틀에 박힌 '정치'의 관념에서 벗어나 사람을 이끄는 거의 모든 형태를 조명한다.
인상 깊은 점은 각각 한명의 위대하고도 대담한 철학자였던 인물들을 세심하게 구분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 한나 아렌트, 마오쩌둥,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인물들 중에는 국회의원으로 일하며 직접 정치에 뛰어든 사람도 있었다. 극단적인 사상을 펼치며 학문적인 연구자의 역할에 치중했던 인물도 있다. 직접 정치를 하는 것과 '리더'라 불리는 인물들을 도와 조언을 하는 것은 결국 펼칠 수 있는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칫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이상적으로 변할 수 있는 '사상가'들의 몽상을 논하기도 하고, 현실에 타협하여 온갖 정치적 장애물을 뛰어넘고 둥글게 다듬어진 '실무'를 논하기도 하면서 저자들은 정치적 견해가 지니는 다양성을 전달해준다.
소크라테스, 공자,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고대의 인물들은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세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3000천 년 전의 인물들이 오늘날까지도 관통하는 진리를 수없이 쏟아낸 것을 보면 분명 하나의 진리는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중세는 신앙과 전쟁, 르세상스 등으로 또 한번 정치철학이 뒤흔들렸던 시대이다. 믿음을 견고히 유지하되, 보다 인간다운 조화를 추구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등장하기도 했고 야만적이었던 시민들을 계몽하는 연구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여전히 격동적이었던 20세기 초반, 한나 아렌트 마오쩌둥과 같은 세계사의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배경과 사상을 점검하며 책은 오늘날 리더십이 지녀야 할 올바른 형태를 다시 한번 논한다. 서른 명의 리더들을 두루 살피기에 가벼울 수 있어 보이지만 결코 내용에 부족함이 없다. 인물들의 주요한 사상과 정치가로서의 신념을 한장 한장 올곧이 담아 마침내 인류의 '정치철학사'를 완성한다.
리더로서, 또는 리더에게 영감을 주는 선각자로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선조들은 정치가보다는 '현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들이었다. 권력과 재물을 탐하겠다는 단편적인 욕망이 아닌 인간사의 복잡한 문제들을 보다 슬기롭게 해결하고 싶다는 다차원적인 야욕으로 길이 남는 사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과학기술은 눈이 부시게 발달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인류 모두의 행복이 줄어드는 오늘날, 서른 명의 위대한 현자들이 글로벌 리더십의 진정한 면모를 일깨워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복잡계의 인간사를 관통하는 진리의 리더십,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였습니다.
* 본 리뷰는 다산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